여동생, 보수적 무슬림 문화 거부… “남녀평등-자유” 주장 SNS스타로
오빠 “가족명예 더럽혀” 살해 고백… 법원, 부모 선처호소에 1심 뒤집어
매년 여성 1000명 ‘명예살인’ 희생
파키스탄 펀자브주에 사는 무하마드 아짐과 안와르 비비 부부에게 2016년 7월 15일은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이날 딸 칸딜 발로치(당시 26세·사진)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며칠 뒤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다. 아들인 와심 아짐이 “가족의 명예를 더럽혔다”며 여동생을 살해했다고 털어놓은 것. 와심은 진정제를 탄 우유를 부모에게 마시게 해 잠들게 한 뒤 발로치를 목 졸라 살해했다. 비비는 “딸이 애타게 도움을 청했을 그때 우리 부부는 죽은 듯 잠들어 있었다”고 했다.
아버지 아짐은 오래전 사고로 한쪽 발을 잃어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다. 가난한 환경에서도 발로치는 당찬 딸이었다. 무슬림 문화에 굴하지 않고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발로치는 트위터를 통해 “나는 평등을 믿는다. 사회 분위기 때문에 여성 스스로 낙인찍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의 트위터 팔로어는 4만 명이 넘었다. 페이스북에 ‘좋아요’를 누른 이용자도 70만 명이 넘었다. 발로치는 ‘파키스탄의 킴 카다시안’으로 불렸다. 파격적인 의상으로 유명한 미국 모델 겸 방송인 카다시안의 이름을 빗댄 것이었다.
패륜적인 범행을 한 오빠 와심은 경찰 조사에서 “내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부모는 “아들이 사면받을 일은 없다”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아버지는 목발을 짚고 경찰서를 찾아 “아들을 처벌해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1심인 파키스탄 지방법원은 2019년 와심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아들에게 중형이 선고되자 부부는 2심에서 태도를 바꿨다. 어머니는 “살해된 딸은 돌아올 수 없다”면서 “아들을 용서한다. 처벌받지 않게 해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살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취지였다.
파키스탄 정부는 발로치 피살 사건 후 ‘명예살인’에 대한 처벌을 강화했다. 가족 구성원 간 명예살인의 경우 다른 구성원이 가해자를 용서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법 조항도 없앴다. 부부는 이미 폐지된 이 조항을 근거로 아들의 선처를 요구한 것이다.
그럼에도 2심 법원은 14일 1심을 뒤집고 와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재판부가 부부의 요청을 고려했는지 등 판결의 구체적인 근거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판결 후 “아들이 무죄를 선고받아 기쁘지만 딸을 잃은 것은 여전히 슬프다”고 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집안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구실로 딸이나 여동생을 살해하는 관습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해마다 1000여 명의 여성이 희생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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