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고발자, 3만7000명 명단 폭로… 독재자 일가-부패 정치인 등 포함
90여개국 인사 총 120조원 운용… 은행측 “90%는 이미 폐쇄된 계좌”
스위스 대형 은행 크레디트스위스(CS)에 비밀 계좌를 튼 고객 3만7000여 명의 명단이 내부고발자 폭로로 드러났다. 베네수엘라, 이집트, 우크라이나 등 세계 90여 개국의 독재자 일가, 부패 정치인, 마약 카르텔 간부, 인신매매범, 전범이 포함됐다. 폭로된 계좌의 총 운용액은 1000억 달러(약 120조 원)에 달했다.
독일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 미국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해 세계 48개 매체가 참여한 ‘조직범죄·부패 보도 프로젝트(OCCRP)’는 20일(현지 시간) CS 비밀 계좌 1만8000여 건의 분석 결과를 보도했다. 이 계좌들은 1940년대부터 2010년대에 걸쳐 개설됐고 이 중 3분의 2 이상은 2000년대 만들어졌다. 폐쇄된 계좌도 있지만 다수는 아직도 운영 중이다.
현직 국가수반으로는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이 7개 계좌에 5억4572만 달러(약 6494억 원)를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미국과 영국 등지에 호화 주택을 구매하는 데 약 1억600만 달러(약 1260억 원)를 쓰면서 조세 회피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집트 ‘30년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2020년 사망)의 두 아들로 부패 혐의를 받고 있는 알라와 가말은 부친 재임 중인 2003년 1억9600만 달러(약 2346억 원) 규모의 계좌를 열었다. 당시 고문과 인권 유린으로 악명 높던 우마르 술라이만(2012년 사망) 전 정보국장도 2007년 2600만 파운드(약 423억 원) 상당 계좌를 만들었다.
1997∼1998년 우크라이나 총리를 지내다 돈세탁 혐의로 유죄를 받은 파블로 라자렌코도 퇴진 직후 최소 800만 스위스프랑(약 100억 원)을 예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21년 재임 동안 필리핀 민주주의의 암흑을 연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를 대신해 돈세탁을 도운 측근 헬렌 리빌라의 계좌도 발견됐다. 약 100억 달러(약 12조 원)를 횡령한 것으로 알려진 마르코스와 부인 이멜다는 이미 가짜 이름으로 CS에 계좌를 만들었다 적발됐다.
내부고발자로부터 최초로 명단을 입수한 쥐트도이체차이퉁은 CS가 고객의 불법적, 부적합 행위를 알고도 계좌를 개설하거나 유지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CS는 네르비스 비야로보스 베네수엘라 전 에너지부 차관이 2008년 국영 석유기업 부패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외부 보고서를 확보하고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계좌에 약 1000만 달러(약 120억 원)를 예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CS 측은 “사실과 다르다. 이번 명단의 약 90%는 이미 폐쇄된 계좌”라며 “문제를 계속 분석해 필요하면 추가 조처를 하겠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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