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독립을 승인하는 법령에 서명하기 직전 1시간여 넘는 연설을 통해 설파한 메시지에는 사실상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부인하는 내용이 담겼다.
푸틴 대통령은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까지 거론하며 “현대 우크라이나는 볼셰비키 정책의 산물인 만큼, ‘레닌의 우크라이나’라고 불릴 만하다”고 하고, “우크라이나는 결코 진정한 국가 지위의 전통을 가진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2013년 말 당시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대가 레닌 동상을 철거한 것을 들어 “그들은 탈(脫)공산화라고 부르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진정한 탈공산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등 우크라이나 친(親)서방 노선에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원래 국가 전통 없었다”…‘정부’ 아닌 ‘정권’으로 칭해
푸틴 대통령은 “현대 우크라이나는 전적으로 러시아, 더 정확히는 볼셰비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이 과정은 1917년 혁명(러시아 공산주의 혁명) 직후 시작됐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어 소련 해체 과정에서 이뤄진 우크라이나의 독립 과정을 언급, “러시아는 신생 독립국이 자국의 외국 자산 일부를 포기하는 것을 대가로 소련 부채 전액 상환 부담을 떠안았는데, 우크라이나는 이와 관련해 1994년 맺은 합의를 비준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는 주권 확립 첫 단계에서부터 우리를 묶는 모든 것을 부정하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에 사는 수백만 주민 전체 세대의 역사적 기억과 의식을 왜곡하려 했다”고 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 루한스크) 지역에서의 추가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크라이나 ‘정권(regime)’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정권·체제로 번역되는 regime이란 단어는 대개 정부를 인정하지 않을 때 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아울러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대해서도 “만약 가입한다며 러시아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미 메시지도 발신…반러 정책 위해 우크라 이용
대미 메시지도 발신했다. 문제의 발단이 된 2008년 서방의 우크라이나·조지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입 약속과 관련, “미국은 단지 명백한 반러시아 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그들을 이용했다”고 했다.
동조한 유럽에 대해서는 “유럽 동맹국들은 그 위험성을 완벽하게 이해하면서도 선임 파트너(미국)의 의지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많은 나토 회원국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에 회의적”이라고 했다.
러시아가 받는 위협과 관련, 푸틴 대통령은 “나토의 주적이 누구인지는 우리도 안다. 러시아”라며 “나토 문서에는 러시아가 북대서양 안보에 대한 주요 위협이라고 공식적·직접적으로 선언돼 있다”고 했다.
서방이 준비하는 제재에 대해서는 “그들은 다시 우리를 제재로 위협하고 있는데, 이런 제재의 목표는 사실 우크라이나 상황과는 상관 없이 오로지 한 가지로, 러시아의 발전을 억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방과의 협상에 대해서는 “우리의 주권과 국익, 가치를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우리의 동등한 대화 제안에 미국과 나토가 사실상 응답하지 않고 우리에 대한 위협 수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러시아는 안보보장을 위해 보복조치를 취할 권리가 충분히 있음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이날 푸틴 대통령이 연설 직후 서명한 도네츠크·루한스크 독립 인정 법령 및 반군 지도자들과의 상호 방위·우호 협정으로 러시아 병력의 즉시(서명하는 순간 발효) 파병이 가능해졌다. 현지에서 군사 기지를 건설할 권리도 가지며, 협정은 10년간 유효(철회 의사 없을 시 5년 자동 연장)하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지금 이 순간부터 러시아 병력 주둔이 가능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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