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 “양보 않겠다” 연설에도
주민들 “내전 때보다 상황 심각… 언제든 떠날 수 있게 짐 싸놔”
러시아계 주민들도 탈출 러시
2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친러 세력이 많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에 러시아군을 투입하겠다고 밝히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2일 오전 2시에 대국민 TV연설에 나섰다. 그는 “우크라이나는 두렵지 않다. 그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양보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합병한 2014년과 현재는 다르다며 “우크라이나는 8년 전과 다른 나라이고 그때와 다른 군대가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8년간 이어진 내전에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돈바스 주민들에게 젤렌스키 대통령의 발언은 큰 위안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네츠크주 아우디이우카에 살고 있는 안나 벨리츠코 씨(39)는 AFP통신에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 모두의 뺨을 때리고 싶다. 둘이 마주 앉아 빨리 이 전쟁을 끝냈으면 좋겠다”며 분노했다.
테탸나 플리시추크 씨(67) 역시 “러시아가 침공할 가능성이 큰 것 같아서 가방을 싸서 현관문 옆에 뒀다”고 했다. 과거 내전이 심각했을 때도 한 번도 집을 떠난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심상치 않아 언제든 대피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는 것이다. 2014년 친러 반군이 도네츠크 주요 지역을 장악했을 때 이미 가족들을 데리고 대피한 경험이 있다는 예브게니 치가노크 씨(27)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부모님 역시 도네츠크에 계신다”고 토로했다.
돈바스 내에서도 정부군 관할 지역과 반군이 장악한 지역에서는 완전히 대조적인 분위기가 감지됐다. 정부군이 관할하는 지역에서는 불안에 떠는 주민들이 많지만 반군 장악 지역에서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러시아 국기를 흔들고 러시아 국가를 부르는 모습이 목격됐다.
친서방 성향이 강한 수도 키예프에서는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를 비판하는 여론이 높다. 미 공영방송 NPR는 많은 키예프 시민들이 러시아의 공격에 대비해 맞서 싸우거나 모금을 하자고 외치고 있다고 전했다. 시민들이 지하철에서 무거운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며 러시아 관련 소식을 읽는 사진도 소셜미디어에 나돌고 있다.
돈바스 내 일부 주민들 또한 러시아로 대피하고 있다. 앞서 19일 친러 반군이 설립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수뇌부들은 러시아계 주민에게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러시아로 떠나라”고 대피 명령을 내렸다. 러시아 또한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쪽 국경 검문소를 개방하고 피란민 캠프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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