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와 루하스크 지역의 독립을 인정하자마자 러시아 병력이 국경을 넘어섰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긴장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날 푸틴의 결정 이후 밤 사이에 이미 러시아 탱크 부대가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 진입한 것으로 관측됐다.
로이터통신 등 복수 매체도 이날 새벽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인근에서 탱크와 장갑차 등이 줄지어서 이동하는 장면을 포착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러시아는 이미 약 19만명의 병력을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한 상황에서 무기까지 공개적으로 배치하며 우크라이나와 서방국가들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이미 미국은 세계 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병력이 집결했다며 우려를 제기한 바 있다.
여기에 러시아 병력이 두 공화국에 진입하면서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 친러 반군과 우크라이나 군간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우크라 동부 지역은 산업 도시…친러 반군은 3분의1만 장악
러시아가 DPR과 LPR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추가 병력을 이 지역으로 배치한 이유는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WSJ는 분석했다.
현재 친러 반군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공화국의 3분의1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은 석탄 매장량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광업과 철강 생산량도 높아 산업 도시로 유명하다. 특히 아조프 해의 중요한 항구가 위치한 마리우폴을 포함해 크라마토르스크, 세베로도네츠크 등은 우크라이나의 통제 아래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현재 친러 반군이 장악한 지역에 병력을 배치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 전체를 장악하고자 한다고 WSJ는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이들 지역의 독립을 승인하면서 도네츠크 주와 루한스크 공화국 전체를 포함시켰다. 이는 러시아가 친러 반군이 장악한 지역 이외의 곳도 언제든지 진입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푸틴 대통령이 독립 승인을 발표하기 전에도 친러 반군이 장악한 지역과 우크라이나 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의 경계선(Line of Contact)에서는 교전이 자주 발생했다.
백악관은 이날 러시아 병력을 친러 반군이 장악한 지역에 배치한 것을 두고 ‘침략(Invasion)의 시작’이라고 규정한 이유다.
◇러, 침공시 ‘민스크 협정’ 위반 수준 넘어 대규모 충돌 가능성↑
러시아가 친러 반군이 장악한 지역 이외의 곳으로 침공할 시 민스크 협정 위반 정도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민스크 협정은 2015년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의 잦은 교전을 막기 위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중재 아래 우크라이나와 친러 반군이 맺은 협정이다.
이 협정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국경을 되찾는 대가로 두 지역에 특별한 지위와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하게 됐다.
또한 두번에 협상 끝에 합의된 이 협정은 2015년 2월 말까지 돈바스 지역에서 중화기 철수가 이루어지는 등 가시적인 성과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항들에 대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를 포함해 이해당사자들이 이견을 보이면서 협정 체결 8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돈바스 지역에서의 무력 충돌은 멈추지 않았다.
유엔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폭력사태가 완전히 중단되지는 않았으며 현재까지 이 지역에서 1만40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00만 명 이상의 이 지역 주민들은 피난을 갔다.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와 친러 반군간 서로 포격을 가했다고 주장하며 비판의 근거로 삼는 것도 민스크 협정이다.
그러나 러시아 군이 친러 반군과 우크라이나 군 사이의 경계선을 넘을 경우 이는 단순히 민스크 협정 위반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양측간 대규모 충돌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러시아가 친러 반군 이외의 지역으로 군대를 진입시킬 경우 민스크 협정의 종료를 의미하는 동시에 전면전 또한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충돌 발생시 민간인 희생만 최대 5만명
러시아의 침공이 현실이 될 경우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현재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두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각각 약 230만명과 150만명으로 추정된다.
미 정보당국은 러시아가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지역 전체를 장악하기 위해 총공격을 감행할 경우 민간인 2만5000~5만명이 숨지거나 다칠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러시아군은 3000~1만명, 우크라이나군은 5000~2만5000명까지 사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우려해 온 서방국가들의 개입까지 감안하면 피해상황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은 우크라이나와 서쪽 국경을 폴란드를 비롯해 발트3국 등에 병력을 추가로 배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부는 이날 미 F-35 전투기 8대, 아파치 헬기 32대와 함께 보병 800명을 발트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과 폴란드에 추가 배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이탈리아에 주둔중인 병력 800명과 독일에 배치된 F-35 전투기 4대를 발트3국으로 이동시키고 다른 F-35 전투기 4대는 나토 남동부에 재비치된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군 장악 이외 지역 정말 침공할까
러시아의 군사행동을 억제 하기 위해서는 서방의 제재가 강화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이날 러시아의 병력 이동을 ‘침략의 시작’이라고 규정하며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했다.
미 재무부는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대외경제은행(VEB)과 국방 부문 자금 조달을 담당하는 프롬스비아즈은행(PSB) 및 이들의 자회사 42곳 제재를 발표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는 러시아 국가 부채에 대해 포괄적인 제재를 가한다는 방침이다. 러시아 정부가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 조달을 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어 영국, 일본, 캐나다, 호주 등도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잇따라 발표했다.
그러나 WSJ는 푸틴 대통령이 오직 힘에만 반응하며 서방국가들은 아직 그를 단념시킬 만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은 제재를 시행하면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억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만 지금 시행되는 제재만으로는 푸틴 대통령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의미다.
과거에도 러시아를 향한 서방국가들의 제재는 있어왔지만 이것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한 적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짐 리시 미 상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최고위원은 전날 밤 성명을 내고 “푸틴은 우크라이나 주권을 계속 침해하기 위해 교묘한 속임수를 쓰면서 서방이 반응하지 않길 바라고 있는 것”이라며 군사행동을 억제하기 위해 러시아 은행과 개인 제재 및 노르트스트림2 중단 등의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를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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