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국 침공당해도 ‘무기력 유엔’… 말로만 러 비판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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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테흐스 총장 “동의없이 군대 진입… 러 평화유지군 아니다” 일갈했지만
안보리 긴급회의, 결의안조차 못 내… 미얀마 사태때도 中-러 반대에 무산

“유엔 헌장의 원칙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는 메뉴’(a la carte)가 아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22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에 군대를 진입시킨 러시아가 유엔 헌장을 정면으로 위배했다며 이렇게 비판했다. 그는 타국 영토에 군대를 보내면서 스스로를 ‘평화유지군’이라고 주장하는 러시아의 행태를 두고 “한 나라의 군대가 동의 없이 타국 영토에 들어가면 평화유지군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2일 대(對)러시아 제재를 발표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존재할 권리를 공격했다”고 비판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역시 “푸틴은 국제법을 위반했고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직접적으로 훼손했다”고 가세했다.

문제는 미국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대통령’으로 꼽히는 유엔 수장의 따끔한 비판에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 헌장에 보장된 영토·주권 보전을 침해한 러시아의 폭주에 제동을 거는 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안보리는 지난달 말에 이어 러시아군이 돈바스에 진입한 21일 저녁에도 긴급회의를 소집해 사태를 논의했지만 결론을 도출하지 못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주요국, 중국과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가 사실상 신(新)냉전을 벌이면서 1945년 유엔 설립 이후 77년을 맞은 유엔 체제가 위기에 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은 최근 전 세계의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 위기에서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해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해 2월 쿠데타 이후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하거나 산 채로 불에 태워 죽였다는 끔찍한 증언이 잇따르는데도 유엔은 이를 규탄하는 결의안조차 내놓지 못했다. 군부 편을 드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한 탓이다. 지난해 5월에는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 내 이슬람 성지 알아끄사 사원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주민 시위를 강경 진압한 것에 격분한 팔레스타인이 로켓포 공격으로 맞섰다. 당시 미국이 중동의 핵심 우방인 이스라엘 편을 드는 바람에 안보리 차원의 규탄 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했다.

안보리는 러시아가 지난해 11월부터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며 노골적으로 침공 의사를 드러냈는데도 석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실효성 있는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이달 유엔의 순회 의장국도 맡고 있다. 의장국은 회의 일정을 정할 권한이 있으므로 마음만 먹으면 안보리 차원의 논의를 계속 지연시킬 수 있다.

#무기력#유엔#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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