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강력한 대(對) 러시아 수출 규제를 선언하면서 우리 기업에도 비상이 걸렸다. 반도체, 자동차, 전자제품 수출에 악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이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에 대해 제재를 가했을 당시의 수출 피해가 재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당시 한국의 러시아 수출 규모는 1년만에 절반 이상 감소할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러시아 현지에서 공장을 가동 중인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의 생산 차질도 우려된다. 미국의 대러시아 수출 규제가 본격화되면 부품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고, 현지 소비도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러시아 제재에 적용하기로 했다. FDPR는 미국 밖의 외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도 생산 과정에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장비·소프트웨어·설계를 사용했을 경우 수출을 금지하는 제재 조항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 시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러시아 수출 통제를 발표했다. 수출 통제는 주로 러시아의 방위·항공·해양 분야를 겨냥했다. 구체적으로 반도체·컴퓨터·통신장비 등이 꼽힌다.
우리 정부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무력 침공을 억제하고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경제제재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지지한다”며 동참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의 수출 주력 상품 반도체뿐만 아니라 자동차·가전제품 수출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우리 기업이 러시아에 직접 수출하는 반도체 물량은 지난해 기준 7400만달러(약 885억원)로 전체 반도체 수출의 0.6% 정도다.
문제는 미국 반도체 기술을 활용한 전자·정보통신 제품의 수출까지 금지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반도체 설계엔 미국 기술이 적용된다. 결국 반도체를 필수 품목으로 쓰는 산업 전반으로 상황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 생산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한국은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희귀가스 네온·크세논·크립톤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그중 크세논과 크립톤의 러시아 수입 의존도는 각각 31%, 17%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전쟁이 발생하면 물류난 발생은 당연하다”며 “수출통제가 현실화하면 핵심 부품 수급에 차질이 우려되고 현지 국내 기업의 공장 운영에 지장이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 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차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에서 연간 23만대를 생산해 인접 국가에 판매하고 있다. 반도체를 포함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이 발생한다면 유럽 내 판매에 악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직접 수출도 우려스럽다. 자동차는 지난해 기준 러시아에 수출 품목 중 25.5%를 차지해 1위다. 금액은 25억4900만달러다.
반도체를 활용하는 가전업체의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러시아 모스크바 인근에 TV와 생활가전 제품 공장을 운영 중이다.
재계에선 2014년 크림반도 제재 당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미국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자국에 편입했다는 이유로 제재를 가했다. 이후 한국의 러시아 수출액은 1년 만에 53.7% 줄었다. 특히 자동차 품목이 타격을 입었다. 자동차 수출액은 2014년 24억500만달러에서 2015년 9억1100만달러로 62.1% 급감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첨단제품의 러시아 수출 차단으로 현지 부품 조달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국내 제조기업의 수입 부담도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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