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징집 대상인 30대 아버지
“헝가리 가면 아이 엄마 나올 것”…홀로 피란 50대女에 간곡한 부탁
난민촌서 남매와 극적상봉 엄마…눈물 쏟으며 ‘은인’에 감사 인사
“부탁입니다. 저 대신 제 아이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 주시면 안 될까요?”
피란을 가던 우크라이나 여성 나탈리야 아블레예바 씨(58)는 헝가리와 맞닿아 있는 우크라이나 남서쪽 접경 지역에서 낯선 남성으로부터 간곡한 부탁을 받았다. 같은 고향 출신인 이 38세 남성은 18∼60세 남성에 대해 출국 금지를 명령한 우크라이나 정부의 징집 조치에 따라 국경경비대를 통과하지 못하게 되자 어린 두 남매라도 헝가리로 피신시키려 했다.
26일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이 남성은 아블레예바에게 아이들의 여권을 쥐여 주며 “아이들 엄마가 이탈리아에서 급히 헝가리로 오고 있는 중”이라며 부인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그는 아이들에게 두꺼운 점퍼를 입히고 모자를 씌워준 뒤 작별 인사를 했다.
아블레예바도 장성한 두 남매를 둔 어머니였다. 하지만 홀로 피란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경찰, 딸은 간호사로 둘 다 국가 동원 대상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10세 안팎인 어린아이들의 운명을 맡겨야 하는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아블레예바는 어린 남매의 손을 잡고 헝가리 국경검문소를 통과했다. 그러곤 국경 초소에 마련된 임시 난민 텐트 옆 벤치에 앉아 아이들과 함께 남매의 어머니를 기다렸다. 얼마 뒤 아블레예바의 휴대전화가 울리자 오빠인 남자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헝가리 국경에 거의 다 왔다는 남매 어머니의 전화였다.
아이들 어머니인 안나 세뮤크 씨(33)는 난민 텐트 인근에 도착하자마자 겉옷도 걸치지 못한 채로 차에서 내렸다. 세뮤크는 눈물을 쏟으며 달려가 아들을 끌어안았다. 어린 딸은 지쳐서 분홍색 담요에 싸인 채 잠들어 있었다. 아블레예바는 울먹이는 얼굴로 이 상봉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뮤크는 아블레예바에게 다가가 감사 인사를 하며 끌어안았다. 두 어머니는 몇 분 동안 서로의 등을 쓰다듬으며 소리 내 울었다.
세뮤크는 “지금 아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다 잘될 거야’ ‘1, 2주 안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라는 말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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