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에 속했으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조력자 노릇을 하고 있는 벨라루스가 핵무기 배치를 허용하는 개헌안을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국민투표로 전격 통과시켰다. 러시아 핵무기가 벨라루스에 배치될 공식적인 통로가 마련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가 핵 위기로 번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지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매드맨(미치광이)’ 전략으로 폴란드 리투아니아 등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과 국경을 접한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해 서방에 양보를 요구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8일엔 러시아 국방부가 3대 핵전력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 전략 핵폭격기 부대 지휘부에 핵전력 강화와 전투 준비를 위한 비상 태세 돌입을 지시했다고 밝혀 핵 위협을 더욱 고조시켰다.
러시아는 2020년 기준 6375기의 핵무기를 보유해 미국(5800기)을 앞선 세계 최대의 핵보유국이다. 소련이 미국 턱밑인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려 시도하면서 핵전쟁 발발 위기로 치달았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60년 만에 미국과 러시아의 핵 대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CNN 등에 따르면 벨라루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간) 국민투표 결과 비핵 지위국을 포기하는 개헌안이 찬성 65.16%로 통과됐다고 밝혔다. 벨라루스는 독립 3년 만인 1994년 소련이 배치한 핵무기를 포기했고 헌법에도 핵무기 반입을 금한다고 못 박았다. 28년 만에 이를 무효화한 것. 1994년부터 집권 중인 ‘동유럽 최후의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은 “서방의 위협이 있으면 즉각 동맹인 러시아에 핵무기 배치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3대 핵전력에 전투 준비 비상 태세를 지시한 푸틴 대통령의 의도도 주목된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이를 “총기의 안전장치를 푸는 셈”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더라도 단계적으로 핵 위협을 고조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제임스 액턴 미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러시아가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거나 핵미사일을 공중으로 향하게만 해놓아도 분명히 위협적인 신호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워질 경우 우크라이나 국경에 전술 핵무기를 투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에 대해 “정당한 이유 없는 긴장 고조와 위협을 만들어낸다”고 했고 미 국방부는 긴급 지휘부 회의를 열었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압박 전술”이라면서도 “오판하면 상황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은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유럽에 200여 기의 전술 핵무기를 배치해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1970년대 소련이 동독에 중거리 핵미사일을 배치했을 때 당시 서독에 주력 중거리 핵미사일인 퍼싱2를 배치하는 등 ‘공포의 균형’ 전략으로 맞섰다.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를 점령한 러시아의 행동으로 인해 방사능 사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난달 27일 수도 키예프와 제2도시 하리코프 내 핵폐기물 저장소가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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