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현지 시간)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 마리우폴의 한 병원 응급실. 잠옷을 입은 채 축 늘어진 6세 여자아이를 끌어안은 아버지가 다급히 병원으로 달려왔다. 머리에 붕대를 감은 이 아버지는 딸의 피로 물든 자신의 손을 보며 울먹였다. 부인 역시 구급차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의료진은 바로 응급 수술을 했지만 포격으로 이미 치명상을 입은 아이는 결국 숨을 거뒀다. 한 의사는 현장에 동행한 AP통신 기자의 카메라를 응시한 채 소리쳤다.
“이 아이의 눈과 지금 울고 있는 의사들의 눈을 푸틴에게 보여줘라!”
○ 유치원 포격에 ‘집속탄’ 사용 정황
러시아의 무차별적 공격으로 민간인 사망자가 늘어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유치원과 학교 등에도 포격과 공습이 가해져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보건부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나흘째였던 지난달 27일까지 민간인 사망자는 어린이 16명을 포함해 352명이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첫 어린이 사망 사례는 키예프의 한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 폴리나다. 당국은 폴리나가 키예프의 한 거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러시아군 측 비밀 파괴공작(사보타주) 단체의 공격을 받아 부모와 함께 사망했다고 밝혔다. 생존자인 두 동생 중 한 명은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받고 있다.
또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인터내셔널은 러시아가 사용이 금지된 집속탄(cluster munition)으로 유치원을 포격해 어린이 1명 등 3명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이날 밝혔다. 그동안 서방 언론은 러시아의 집속탄 사용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국제 비정부기구가 이를 공식적으로 거론한 것이다. 집속탄은 참혹하게 인명을 살상하는 대표적인 비인도적 무기다.
지난달 25일 우크라이나 북부 수미주 오흐티르카에서는 유치원과 보육원이 러시아군의 집속탄 폭격을 받아 최소 6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한 명은 8번째 생일을 석 달 앞둔 7세 소녀 알린사였다. 앰네스티에 따르면 폭격 현장에 있던 한 남성은 격하게 절규했다. “봐라. 전부 피범벅이다. 여기가 유치원이라는 게 정말 견딜 수가 없다. 이곳이 군사시설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국제 아동인권단체 세이브더칠드런 역시 지난달 27일 오흐티르카 지역에서 유치원을 포함해 교육시설 7곳이 공격을 받았다고 공개했다. 아녜스 칼라마르 앰네스티 사무총장은 “보육원, 유치원 할 것 없이 무차별적 공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너무 구역질난다. 이건 전범 조사 대상”이라며 분노를 표했다.
○ 지하벙커 맨바닥에서 미숙아 치료
러시아군의 무차별 포격으로 미숙아들이 지하벙커 등 열악한 환경에서 치료를 받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달 27일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키예프의 한 아동병원에서 생후 2개월 된 미숙아 딸을 둔 나탈리야 티시추크 씨는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 새벽, 공습 사이렌이 울리자 아기를 안고 병원 지하실로 대피했다. 다른 부모들도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던 미숙아들을 끌어안고 간호사들과 함께 생명유지 장치, 산소통 등을 들고 뛰어내려 갔다.
병원 지하실에는 성인용 침대나 의자가 없어 부모들은 아기를 안고 맨바닥에 앉아 있어야 한다. 티시추크 씨는 “전쟁을 예상한 사람이 없어서 준비된 사람도 없다. 약이나 아기 침대 등 최소한의 필수품만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병원 지하실에는 암 등 중증질환 어린이 환자 수십 명도 함께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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