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애써 참고 있는 30대 남성과 결연한 의지로 무장한 40대 남성. 서로 다른 표정을 한 두사람의 시선은 한 곳을 향했다.
그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예상시간을 훌쩍 넘어버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발 열차가 들어오는 선로였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 사람은 전쟁을 피해 이곳으로 오는 아내와 두 아이를 기다렸고 다른 한 사람은 전쟁통에 남아있는 친구와 함께 조국을 위해 싸우고자 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이는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폴란드 프셰미실역에서 매일 수백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의 운명은 엇갈리고 있다.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의 국경 검문소가 위치한 메디카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프셰미실 중앙역의 5번 승강장에는 3일(현지시간) 오후 1시3분쯤 두개의 줄이 길게 늘어 서 있었다.
키이우에서 몇번이나 연착이 되면서 최초 예정시간보다 이미 5시간 늦은 오후 12시35분에 도착하기로 되었던 열차는 그 시간이 되었지만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폴란드 내 여러 지역에서 온 자원봉사자들과 비영리단체(NGO)들 소속 봉사자들은 곧 도착할 피란민들을 위해 음식과, 기저귀, 의료용품, 유심카드 등을 비치했다.
그러나 최종 도착 예정시간보다도 약 30분이 지나도 열차가 오지 않자 승강장 왼편에 설치된 철조망 앞에는 20명 남짓의 사람들이 초조한 눈빛으로 선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정색 패딩을 입은 이고르(34)는 차마 열차에 다가가지 못한 채 1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여동생과 함께 눈시울을 붉히며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서 있었다.
4년 동안 폴란드에서 비둘기 생활을 해왔던 그는 우크라이나 빈니차에 두고온 아내와 6살, 3살 아이가 이번 열차를 타고 온다는 소식에 오전 9시부터 추위 속에서도 역을 떠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중부에 위치한 빈니차는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뒤 수시로 공습 사이렌이 울리는 등 수많은 포격을 받은 곳이다.
그는 “나는 전쟁이 시작되고 난 뒤 아내와 아이들의 생사가 걱정돼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며 “빈니차를 떠난 가족들이 이번 열차를 탄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안도를 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열차를 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눈앞에 나타날때까지는 실감을 못할 것 같다”며 “1분이 하루 같다. 차라리 내가 그 고통에 직면했으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열차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쏟아져 내렸고 이들은 대부분 아이와 여성들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된 뒤 18~60세 남성의 출국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열차에서 내린 이들은 지친 표정이 역력했지만 봉사자들이 챙겨주는 빵과 물, 음료를 챙기며 세관으로 향했다.
철조망 앞에서 기다리는 피란민들의 가족들은 이들이 세관을 통과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세개의 열차 출입구에서 나오는 아이와 여성들 중 자신의 가족이 내리는지를 계속 확인했다.
빨간색 패딩을 입은 채 울먹이던 30대 여성은 자신의 아이들이 열차에서 내리자 철조망을 잡은채 목놓아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세관을 통과한 뒤 승강장을 빠져나온 피란민들 중 자신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서로 포옹을 하며 한참을 웃거나 울거나 하면서 그 자리를 지키다 집으로 향했다.
피란민들이 눈물의 상봉을 하는 동안 이들이 타고온 열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결연한 의지가 가득한 표정으로 탑승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가족을 두고 왔거나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전쟁이 한창인 우크라이나로 향했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가족을 두고 조국을 위해 자발적으로 입대를 하려는 이그(45)도 그들 중 한명이었다. 24살, 20살 딸과 아내를 더블린에 두고 오면서까지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잊을 수 없었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우크라이나를 간다고 말했을 때 딸아이가 울면서 말렸다”면서도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내 친구들과 함께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며 “상황을 이렇게 만든 푸틴은 정말 XX다”라고 말한 뒤 호탕하게 웃으며 열차를 타러 들어갔다.
키이우로 가는 열차를 타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그처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원 입대를 하는 남자들이었지만 미처 그곳을 빠져나오지 않은 가족들을 데리러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탈리아 팔레르모에서 살고 있는 엘레나는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아직 살아있는 23살 딸을 구출하기 위해 키이우행 열차를 탔다.
그는 “내 딸이 살던 아파트가 러시아의 공습에 파괴되었지만 아직 그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그 곳에 혼자 있는 딸이 걱정돼 바로 이곳으로 왔다”고 말했다.
다만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딸을 데리고 다시 어떻게 나올지 너무 걱정된다”며 우려했다.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하루에도 수많은 피란민들이 우크라이나를 떠나 폴란드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반대로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이나마 조국에 도움이 되기 위해 다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사람들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대피한 것에 대한 안도감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결연한 의지. 여기에 가족을 찾기 위해 전쟁통에 들어가는 용기. 매일 이 모든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곳이 현재 프셰미실 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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