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우크라 침공]포격에 화재… 방사능 누출은 없어
IAEA “국제법 위반”, 안보리 소집… S&P, 러 신용등급 8단계 추가 강등
유럽 최대 원자력발전소인 우크라이나 남부 자포리자 원전에 4일(현지 시간) 러시아군이 포격을 가해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의도적 공격이라고 했다. 불은 껐지만 자칫 방사성물질이 누출되는 ‘핵 재앙’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러시아군 포격으로 이날 오전 1시 40분경 원전 단지의 5층짜리 교육·훈련용 건물에 불이 났다. 화재 이후에도 러시아군이 오전 3시까지 원자로 주변 시설에 포격을 계속해 소방관 진입이 지체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날 오전 6시 20분경 불을 껐다고 밝혔다. 러시아군은 원전을 점령한 뒤 직원들을 통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남동부에 있는 자포리자 원전은 원자로 6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체 전력의 25%를 생산한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화재 이후 “원자로 가동을 안전하게 중단시키고 있다”며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가동되지 않는 원자로 1호기 격실이 일부 훼손됐으나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포격이 가동 중인 원자로에 가해졌거나 불이 원자로까지 번졌다면 원전에 치명적인 위험이 발생할 수 있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방사성물질 유출은 없었다”면서도 “원전 공격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날 긴급회의를 소집해 러시아의 자포리자 원전 공격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미국과 서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돈줄인 신흥 재벌(올리가르히)을 정조준했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3일 러시아 최대 철강 재벌 알리셰르 우스마노프 등 푸틴 대통령과 결탁한 올리가르히 19명과 그들의 가족 및 측근 47명을 제재 대상에 올리고 이들의 미국 내 자산을 압류했다. 영국과 독일도 올리가르히를 겨냥한 독자 제재안을 발표했다.
특히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이날 러시아 국가신용등급을 기존 BB+에서 CCC―로 8단계 더 낮춰 러시아의 국가부도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 CCC―는 국가부도를 뜻하는 D보다 불과 두 단계 위다. S&P는 “디폴트(채무 불이행) 위험을 실질적으로 증가시킬 것으로 보이는 조치들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러 포격에 유럽최대 원전 ‘불길’…“폭발땐 체르노빌 피해의 10배”
유럽, 36년만에 방사능 재앙 공포 시민 수천명 바리케이드 저지에도… 러軍, 시민향해 발포하며 장악나서 80분 집중 포격… 화염에도 안멈춰, “인류 최악의 핵재앙 문턱에” 우려 교육-훈련용 건물 3개층 불타, 러軍 점령… “직원들, 총구 앞서 일해”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핵 재앙 문턱에 서 있다.”
우크라이나 헤르만 할루셴코 에너지장관은 4일(현지 시간) 러시아군 포격으로 자포리자 원자력발전소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자 러시아에 공격 중지를 촉구하며 이같이 말했다. 자포리자 원전은 1986년 폭발사고가 난 체르노빌 원전은 물론이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보다 큰 유럽 최대 규모 원전. 화재는 원전 단지의 5층짜리 교육·훈련용 건물에 났지만 가동 중인 원자로가 포격당하거나 화재가 원전 시설 전체로 확산됐다면 체르노빌 사고 이후 36년 만에 유럽이 방사능 재앙 위기를 맞을 뻔했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자포리자 원전이 폭발하면 체르노빌 원전 사고보다 피해가 10배 더 클 것”이라고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열감지기를 갖춘 러시아 탱크는 자신들이 어딜 포격하는지 알고 있다”며 “러시아는 핵 시설을 공격하고 있다. 유럽은 이제 깨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의도적으로 원전을 조준 공격했다는 것이다. 러시아군의 무차별 공습이 이어지면서 ‘핵 공포’가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러軍, IAEA 경고 무시하고 원전 포격
러시아군이 3일 원전 주변을 포위하자 자포리자 시민 수천 명이 바리케이드를 치고 저지에 나섰다. 러시아군은 이날 밤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면서 원전 장악에 나섰다. 4일 오전 1시 40분경 러시아군 포탄 여러 발이 원전 시설 내부에 떨어져 큰 폭발과 함께 불길이 솟아올랐다. 그럼에도 러시아군은 포격을 멈추지 않았다. 포격은 1시간 20분가량 이어졌다.
소방대가 원전 시설 화재를 진압한 것은 4시간 40분이 지난 오전 6시 20분경이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화재로 교육·훈련용 건물 3개 층이 탔다고 밝혔다.
앞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2일 긴급회의를 열고 자포리자 주변 지역을 장악한 러시아에 “무력 충돌이 원전 시설을 위험에 빠뜨려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이를 무시하고 자포리자 원전을 점령했다. 체르노빌 원전에 이어 두 번째다. 원전 운영 관계자는 “러시아군이 직원들을 통제하고 있고 직원들은 러시아군의 총구 앞에서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중 원전 시설이 공격 받은 것은 처음이다. 자포리자 원전 원자로 6기 중 2기는 침공 이튿날인 지난달 25일 원전 운영사가 안전을 이유로 가동을 중지했고 4기는 정상 가동 중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IAEA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주변 지역 방사능 수치에는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국내 원전 전문가들은 자포리자 원자로는 최소 1m 두께의 철근콘크리트 격납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체르노빌 원전보다는 견고하다고 했다.
○ “원자로 하나만 폭발해도 핵 재앙”
자포리자 원전 화재는 러시아군이 2일부터 민간시설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 폭격하는 가운데 발생했다. 우크라이나는 4개 원전에서 원자로 15기를 운영하고 있다. 원자로 3기를 운용하는 남우크라이나 원전이 있는 미콜라이우주, 서북부 리우네 원전과 흐멜니츠키 원전 지역도 러시아군 공격 대상이다. 사실상 우크라이나 원전 전체가 공격 위험에 노출돼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5기 원자로 중 하나라도 폭발하면 모두 끝장”이라며 “러시아를 제외한 어떤 나라도 원전에 포격을 가한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군이 점령한 체르노빌 원전도 억류된 원전 직원들이 교대 없이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원전을 운용해 안전사고 위험이 커졌다. 레이크 배럿 전 미국 에너지부 부국장은 “오염된 토양에 포탄이 떨어져 세슘 같은 방사성물질이 확산되면 큰 위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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