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무너져 어린이들 깔리고, 임산부는 길바닥에… “전쟁 아닌 말살”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0일 16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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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산부인과 병원이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아 부상한 임신부가 계단을 걸어 피신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병원 잔해에 깔려 있다”라며 이번 공격을 “잔혹 행위”라고 비난했다. [마리우폴=AP/뉴시스]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마리우폴에서 산부인과 병원이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아 부상한 임신부가 계단을 걸어 피신하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아이들과 사람들이 병원 잔해에 깔려 있다”라며 이번 공격을 “잔혹 행위”라고 비난했다. [마리우폴=AP/뉴시스]
만삭의 임신부들이 재가 날리는 길바닥에 누웠다. 산부인과병원은 쑥대밭이 됐다. 재로 덮인 침대에는 핏자국이 선명하다. 인근 어린이병원 건물도 파괴됐다. 파편에 다친 머리를 붕대로 감은 의료진들이 병실에서 남은 의료 기구를 옮겼다.

9일(현지 시간) 러시아군 군용기가 산부인과·어린이병원까지 폭격한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지옥도였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마리우폴 시의회는 참상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개하며 “러시아군이 의도적으로 산부인과·어린이 병원을 공격했다”고 규탄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 후 가장 암울한 사건”이라고 전했다. 산부인과 병원 공습과 별도로 이날 마리우폴 도심에서는 지름 25m로 판 구덩이에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숨진 시신들 30~40구가 집단으로 묻혔다.
러 병원 폭격에 “어린이들 깔렸다”

[마리우폴=AP/뉴시스]
[마리우폴=AP/뉴시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내고 “병원까지 폭격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나. 어린이들이 건물 잔해에 깔려 있다”고 분노하면서 서방에 우크라이나 상공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듭 요구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에 따르면 이날 공습으로 17명이 다쳤고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 정확한 피해 상황은 여전히 확인 중이다. 교황청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세르히 오를로프 마리우폴 부시장은 “침공 후 지금까지 최소 1207명이 숨졌다”며 “(러시아가)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인도주의 통로’ 가동을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며칠째 고립된 마리우폴은 러시아군이 보급로도 끊어 식량과 의약품이 바닥나고 난방과 전기도 끊겨 신생아 3000여 명이 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러시아가 마리우폴 40만 시민을 인질로 잡고 있다”고 규탄했다.

마리우폴은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세력이 일부를 장악한 남동부 돈바스 지역과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잇는 ‘남부 회랑’의 전략적 요충지로 꼽힌다.

키이우 인근 지역 주민 야로슬라바 카민스카 씨는 미 CNN에 “밖은 총알과 포탄이 쏟아져 집에 숨어 지낸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말살”이라고 절규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민간인 공습을 부인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군의 인권 침해, 전쟁범죄 증거를 모아 공개하는 웹사이트 개설 계획을 발표했다고 BBC는 전했다. 이 증거들은 국제사법재판소(ICJ) 재판에서 사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러, 생화학무기 사용 가능성”

[마리우폴=AP/뉴시스]
[마리우폴=AP/뉴시스]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트위터에 “러시아의 생화학무기 사용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영국 국방부도 “러시아군이 (대량살상무기인) 진공폭탄용 다연장 로켓발사대를 사용했다”고 발표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이날 “(러시아군이 점령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 이어 자포리자 원전에서도 핵물질 상태를 점검하는 원격 모니터링 통신이 두절됐다며 방사성 물질 누출을 우려했다.

10일 터키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회담이 열렸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반대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포기와 이에 따른 중립국 추진 등을 지렛대 삼아 합의점을 찾을 수도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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