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엔 장수 못바꿔” 바이든-마크롱, 우크라 전쟁에 지지율 ‘쑥’[글로벌 포커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12일 03시 00분


올해 새 지도자 뽑는 선거 줄이어
11월 美 중간선거 앞둔 바이든… 잇단 대러 강경책으로 여론 호전
인플레 등 경제 상황이 변수로… 佛 마크롱은 다음달 재선 도전
‘유럽 지도자’ 이미지로 긍정 평가… 시라크 이후 20년만에 연임 기대

9일 대통령선거를 치른 한국을 포함해 올해 미국 일본 프랑스 호주 브라질 등 세계 주요국에서도 대선과 총선 등이 실시되는 ‘정치의 계절’이 도래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요동치는 국제 정세를 반영하듯 주요국 정상들의 지지율도 요동치고 있다. ‘전시(戰時)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격언 때문인지 현직 최고 지도자로의 지지율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혼란 때부터 시작됐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세는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반등했다. 러시아에 대한 초강경 제재를 주도하며 ‘서방의 지도자’를 자처한 덕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중간평가’가 될 11월 미국 중간선거 때까지 반등세가 이어질지 관심이다. 다음 달 대선을 앞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이번 전쟁을 계기로 재선에 무난히 성공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는 최근 ‘유럽연합(EU)의 지도자’를 자처하고 있다.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둔 일본에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안보 이슈가 커지고 있다. 중국은 10월로 예정된 제20차 공산당 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장기 집권(3연임)을 확정한다. 브라질, 필리핀, 홍콩 등에서도 새 지도자가 탄생한다.
○ 지지율 회복한 바이든… ‘경제’가 변수
미국은 11월 중간선거를 통해 하원 435석 전체, 상원 100석 중 35석을 새로 뽑는다. 집권 민주당은 현재 하원 다수당이고 상원은 야당 공화당과 50석씩 양분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 중 최소 한 곳에서는 다수당 지위를 잃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미 외교협회(CFR)에 따르면 역대 정권의 첫 중간선거마다 여당이 평균 하원 29석을 잃으며 패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전방위적 러시아 제재를 단행하자 여론이 바뀌고 있다. 공영라디오 NPR가 이달 1, 2일 양일간 미국 성인 132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7%를 기록했다. 지난달 15∼21일 조사보다 8%포인트 올랐다. 최근 40년 중 최고치로 치솟은 미국 소비자물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등의 여파로 올해 1월 20일 퀴니피액대의 조사에서 지지율이 33%까지 떨어졌던 것을 감안하면 고무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냉전 때 옛 소련과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였던 기억이 선명한 미국인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반러 정책에 압도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NPR 조사에서 “러시아 경제 제재에 찬성한다”는 답이 83%에 달했다. “에너지 가격이 올라도 러시아 제재에 찬성한다”는 답 역시 69%였다.

현재 흐름이 중간선거 때까지 이어질지는 향후 경제 상황에 달렸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제재가 미국의 인플레이션(급격한 물가 상승)을 악화시킨다면 중간선거에서 높은 지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 재선 눈앞에 둔 마크롱

다음 달 10일, 24일 각각 대선 1차 투표와 결선 투표를 치르는 프랑스에서는 마크롱 대통령이 유리한 상황이다. 16년간 유럽 최대 경제대국 독일을 이끈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지난해 12월 은퇴하고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여파가 가시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유럽의 지도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모스크바에서 만나 우크라이나 사태를 논의했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넘어선 ‘유럽 방위군 창설’ 등을 거론하는 등 국제안보 의제를 주도하고 있다.

3일 프랑스24에 따르면 최근 주요 언론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28%, 극우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 대표가 17%를 얻어 두 사람이 결선에 진출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마크롱 대통령은 결선투표에서 56.7%를 얻을 것으로 예측됐다. 반면 사회당 소속의 안 이달고 파리 시장 등 좌파 후보들은 지지율이 미미하다.

마크롱 대통령이 승리하면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한 프랑스 대통령이 된다. 프랑스 싱크탱크 장조레스재단은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 프랑스 국민은 깃발을 들고 국가원수 뒤에 줄을 선다”고 평했다. 미 CNN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이 프랑스 대선 판도를 결정했다고 분석했다. 오창룡 고려대 노르딕-베네룩스센터 교수는 “여러 여론조사에서 결선투표 상대가 누가 되든 마크롱 대통령의 승리가 예상된다. 프랑스 대통령으로서 국제적인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에 대한 긍정 평가가 높다”고 진단했다.

미국 영국과 안보동맹 ‘오커스’를 결성한 호주도 5월 21일 총선을 치른다. 현재 여론조사에서는 중도우파 집권 자유당이 중도좌파 야당 노동당에 뒤지고 있다. 미중 갈등 국면에서 미국 편에 서며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제재 등 각종 반중 정책을 주도한 스콧 모리슨 총리는 차기 총리 지지율 여론조사에서 최근 1위를 달리는 앤서니 앨버니즈 노동당 대표를 ‘친중’이라고 비난하며 반등을 꾀하고 있다.
○ 남미, 좌파 부활 ‘핑크타이드’ 유력
남미 최대 경제대국 브라질은 10월 2일 대선을 치른다.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이 방역 실패 이후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2003∼2010년 집권했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야권 후보로 급부상하며 지지율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속노동자 출신인 룰라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보우사 파밀리아’(빈민층 현금 지급) ‘포미 제루’(기아 제로) 등 복지정책을 주도해 저소득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2018년 재직 중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지만 지난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고 대권에 재도전할 채비를 갖췄다.

5월 대선을 실시하는 콜롬비아에서도 과거 반정부 무장투쟁을 주도한 좌파 구스타보 페드로 상원의원이 ‘첫 좌파 대통령’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그는 집권에 성공하면 비상사태를 선포해 경제난, 코로나19, 인신매매 등 강력범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대선을 치른 페루와 온두라스에서도 모두 좌파가 승리한 상황에서 브라질과 콜롬비아에서도 좌파 지도자가 등장하면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필두로 중남미 곳곳에서 좌파 지도자가 출현한 2000년대 초중반의 1차 ‘핑크타이드’(온건 사회주의 정권의 잇따른 집권)에 이은 2차 핑크타이드가 나타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 ‘민주주의 탄압’ 홍콩-필리핀-헝가리도 선거

반중 활동을 한 사람에게 최고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는 홍콩 국가보안법을 2020년 제정한 후 민주 인사를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있는 홍콩에서도 5월 8일 임기 5년의 새 행정장관이 나온다. 당초 지난달 18일 선출할 예정이었지만 캐리 람 행정장관이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하다”며 선거를 연기했다.

홍콩 행정장관은 38개 직능별 선거위원회가 구성한 선거인단이 후보를 지명하면 중국 총리가 임명하는 간선제다. 홍콩 시민은 투표권이 없고 사실상 중국 공산당이 낙점하는 구조여서 ‘거수기 투표’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선출된 람 장관이 재선 도전 여부를 밝히지 않은 가운데 렁춘잉(梁振英) 전 행정장관 등도 후보로 거론된다.

하루 뒤 실시되는 필리핀 대선에는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가 출마했다. 1965년부터 1986년까지 21년간 장기 집권하며 수많은 반대파를 탄압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이 남긴 상흔이 여전하지만 마르코스 주니어는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60%대를 기록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유권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40대 이하 젊은층이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독재를 경험하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력한 지도자’상을 내세우고 있는 마르코스 주니어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현 대통령의 딸 사라를 부통령 후보로 기용했다. 전설적인 ‘복싱 영웅’ 매니 파키아오 상원의원 또한 대선에 도전했지만 마르코스 주니어의 지지율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2010년 집권 후 ‘동유럽의 도널드 트럼프’로 불릴 정도로 극우 민족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는 다음 달 총선에서 4연임에 도전한다. 앞선 두 번의 총선에서 그의 재집권을 저지하지 못한 야당들은 정권 교체를 위해 중도우파 후보 마르키저이 페테르 호드메죄바샤르헤이 시장을 단일 후보로 내세웠다. 영국 BBC는 오르반 총리에게 패했던 과거 야권 후보들과 달리 마르키자이 시장은 총리와 비슷한 보수 성향에 젊고 참신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며 오르반 총리가 힘든 선거를 치를 것으로 내다봤다.
○ 日 참의원 선거-中 20차 공산당 대회

지난해 10월 취임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7월 25일 첫 참의원 선거를 치른다. 총 248석 중 124석을 뽑는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위협 등으로 안보 강화 여론이 높아지면서 보수 성향인 집권 자민당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는 북방영토 반환은 일본 사회의 주요 의제로도 꼽힌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전통적으로 참의원 선거는 소비세, 세제개혁 등 경제 문제가 주요 의제였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며 이런 흐름이 자민당에 유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미국의 핵무기를 일본에 배치하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주장하며 반중, 반러 정서가 강한 보수 유권자를 자극하고 있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총리는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소위 ‘비핵화 3원칙’을 선언했다. 이후 55년간 일종의 금기로 여겨졌던 핵 보유를 아베 전 총리가 언급하면서 파장이 커지고 있다.

원폭 피해지인 히로시마 출신인 기시다 총리는 비핵화 원칙을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당내 입지가 비교적 약해 최대 파벌인 ‘아베파’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선거 전까지는 그가 아베 전 총리를 의식해 비핵화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지 않더라도 총선에서 승리한 후에는 이 문제를 둘러싸고 당내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부터 11일까지 연례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를 치른 중국은 양회 기간 중 경제성장 등 국내 의제에 집중한다는 관례를 깨고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의제에 신경 썼다. 시 주석은 8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화상회담을 갖고 외교 해법을 통해 우크라이나 위기를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중국 수뇌부가 양회 기간에 외국 정상과 회동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0월 시 주석의 3연임 확정 시 제기될 국내외 비판을 미리 차단하고 전 세계로 확산되는 반중 정서를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바이든#마크롱#우크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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