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중국이 최악의 경제적, 외교적 피해를 회피하고 전쟁이 야기하는 지정학적 세력 변화 과정에서 이익을 보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하지 않고 있지만 중국이 전쟁에 개입하는 것도 피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를 비난하면서도 중국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재를 따를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시 주석은 지난주 유럽 지도자들에게 협상을 통한 해결을 지원할 것이라는 애매한 입장을 밝혔으나 중국 당국자들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한 러시아의 허위 선전을 지지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로마에서 만나 중국의 러시아 지원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중국 지도부는 최종적으로 러시아와 미국이 다투다 지치는 사이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세계에서 균형자로서 부상하려 계산하고 있다.
중국 고위당국자들을 자문해온 홍콩중국대학교 정융녠(鄭永年) 교수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유력지에 “전략적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한 중국의 현대화가 지속되면서 중국의 힘이 강화되고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에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중국 전략의 핵심에는 푸틴을 우크라이나 전쟁에 끌어들인 미국이 무모한 외교적 모험 탓에 약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자리하고 있다.
여론 매체와 친정부 분석가들의 호응을 받는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미국은 유럽에 신경쓰느라 중국 및 아태 지역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미 스팀슨센터 윤 선 중국프로그램 책임자는 “결국 러시아는 국제 공동체의 왕따가 될 것이고 중국 말고 의지할 데가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중국의 앞길이 어떨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러시아를 너무 가까이 하면 유럽과 다른 지역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을 키워 역효과를 낼 것이다. 독일, 프랑스 등 미 동맹국들이 안보 지출을 늘리고 있음에 따라 미국은 더 많은 군사 자원을 중국에 돌릴 수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미 군사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 때문에 중국에 대한 경계를 약화시키기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펑 중국 난징대학교 국제관계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이 미국에 더 의존하게 되면 중국의 딜레마가 커질 것을 크게 우려한다”고 말했다. 일본, 호주 등 미국의 태평양 동맹국들도 “보다 강력한 군사적 태세를 갖출 것이다. 이런 일들이 중국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리번 보좌관과 양제츠 국무위원의 만남은 러시아가 중국에 군사장비 및 우크라이나 전쟁 지지 및 제재에 맞설 수 있도록 경제 지원을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이뤄졌다. 중국은 보도를 부인했다.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중국 당국자들에게 세상이 “한세기 동안 보지 못했던” 대격변의 시기에 돌입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당국자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허둥지둥했다.
침공하는 당일까지 중국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전쟁 준비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배격했으며 미국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후 중국 당국자들은 평소 강조해온 주권 존중 원칙에 어긋난 푸틴의 안보 우려에 공감을 표시하느라 애를 먹었다.
시 주석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가진 화상회담에서 유럽에서 “전쟁이 다시 발발했다”면서 개탄했다. 그러나 중국 외교관들은 러시아의 허위선전을 따라 미국이 우크라이나에서 생물무기를 개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프랑스 국제관계연구소 중러관계 전문가 보보 로는 “최근 움직임은 서방은 물론 비서방에서의 중국의 위상에 해롭다. 중국이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적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 역시 제재로 인한 경제적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중국 당국자들은 제재 조치를 비난하고 있으나 미국과 동맹국들은 제재 실행에 일치단결한 모습이다.
중국 경제는 다른 나라와 달리 충분히 커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또 중국 회사들은 2014년 러시아가 크름반도를 합병했을 때처럼 러시아의 절박한 무역 필요성을 활용해 이익을 볼 수 있다.
중국 전략은 바이든 미대통령이 취임 이래 강화돼온 대중 강경입장을 고려한 것이다.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소 유안 펑 소장은 “바이든 정부의 중국 전략은 트럼프 정부의 전략을 오히려 강화하고 있다”는 입장을 최근 기고했다. “바이든이 중국과 ‘신냉전’을 벌이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중국은 모든 면에서 한기를 느낀다”는 것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에 맞서려 한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형성한 시주석과 푸틴 대통령의 관계는 포기하기엔 너무나 소중하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세계를 지배해왔다고 주장하면서 양국이 초강대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독트린을 제시했다.
푸틴 대통령이 미국이 동유럽에서 러시아를 위협하고 있다고 묘사한 것처럼 시주석은 미국이 대만을 지원하는 것을 중국에 대한 위협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몇 주새 중국 분석가들은 100년 전 영국 지리학자 해롤드 존 매킨더 경이 쓴 글을 인용해 중유럽을 지배하는 나라가 유라시아 전체를 지배할 것이며 유라시아를 지배하면 전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두긴은 자유주의적이고 방종한 서방과 보수적 유라시아대륙, 러시아 사이의 갈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썼다.
“푸틴의 사상가”라는 두긴은 2018년 베이징에서 행한 일련의 강연을 통해 그같은 주장을 펼쳤다. 당시 그를 초청한 장웨이웨이는 시주석의 총애를 받는 학자로 지난해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 25명을 상대로 강연한 적이 있다.
두긴은 2019년 중국 국영 TV와 인터뷰에서 “인류 전체의 일부에 불과한 서방이 국제질서를 주도해선 안된다. 인류의 다수가 서방이 아닌 아시아에 살고 있다”고 강조했었다.
서방이 규정한 국제적 인권기준에 대한 반대는 중국의 미국 비판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지난해 12월 바이든 정부의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맞서 발표한 정부 문서의 중심 주제였으며 푸틴 대통령과 시주석이 지난달 베이징에서 만나 발표한 공동성명에서도 중심 주제였다.
중국이 서방의 경제제재에 맞서 지원을 하게 되면 러시아는 갈수록 더 경제적, 외교적으로 중국에 예속되면서 전략적 균형자로서 중국의 발언권이 강해진다고 분석가들은 말한다.
홍콩중국대학교 쳉교수는 “낡은 질서가 빠르게 해체되고 초강대국의 독재정치가 부상하고 있다. 여러 나라들이 먹이감을 노리는 호랑이처럼 야심을 키우면서 낡은 질서가 무너진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는데 민감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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