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봉투에 담긴 아들 시신 받은 엄마…굴하지 않는 미콜라이우

  • 뉴시스
  • 입력 2022년 3월 16일 12시 12분


미국 뉴욕타임스는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도시 미콜라이우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계속되는 포격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싸울 의지를 다지고 있다고 15일(현지시간) 현지 르포기사로 보도했다.

알라 랴브코는 안치소 마당에 서서 슬픔과 분노로 떨었다. 그의 아들 로만 랴브코 대위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첫날 숨졌다. 이후 2주가 되도록 아들의 장례식조차 치르지 못하고 있다.

가방에 담긴 채 바닥에 놓인 아들의 시신을 가리키며 알랴는 “아들을 씻어 주지도 못하고 있다. 쓰레기 봉투에 담긴 아들을 데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안치소가 넘쳐 나고 있다. 사망자들은 도착할 당시 상태 그대로 가족들에게 인계되고 있다. 피범벅이 되고 곳곳이 검게 그을린 헤어진 군복 차림이다. 안치소 건물 복도와 마당, 창고에 시신이 쌓여있다. 군인과 민간인 시신은 종이나 카펫으로 덮여 있으며 아무 것도 덮지 않은 시신도 있다.

알라가 아들을 보고 울부짖는 동안에도 포격의 진동이 안치소를 흔들었다. 이날 하루 안치소에 온 시신이 132구였으며 추가로 더 도착한다고 했다.

러시아군은 미콜라이우가 진격로 중간에 있기 때문에 공격하고 있다. 시내의 바르바리우스키 다리가 남부 부강 하구를 건너는 유일한 통로다. 다리를 확보해야만 서쪽으로 진격해 우크라이나 해군 사령부가 있으며 우크라이나 최대 민간항구인 흑해 연안 오데사 항구로 갈 수 있다.

다리를 점령하려면 우크라이나군을 물리쳐야 하지만 아직은 성공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이 마구잡이로 민간인 거주지와 병원, 수퍼마켓을 포격하는 건 군사적 목적 달성 보다는 공포를 조성하려는 것이다. 주말 동안에만에도 폭격으로 수십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미콜라이우는 전혀 항복할 기미가 없다. 쓰레기 청소가 이뤄지고 있고 시공무원들은 가로수 가지치기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실내디자인 사업을 하는 한 가족은 하루 종일 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식량이 없는 이웃들에게 먹거리를 나눠주고 있다. 포탄이 날아오면 급히 지하실로 대피한다. 러시아 탱크를 노획해 수리한 뒤 우크라이나군에게 넘기는 청년 단체도 있다.

안치소에서 가까운 커피숖 커피고는 장사가 잘된다. 주인이 문을 닫으려고 하자 10대 종업원이 반대했다고 했다. 머리 한줄을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18살난 바리스타 빅토리아 쿠플레우스카야는 “전혀 겁나지 않는다.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때 러시아의 조선산업 중심지였던 미콜라이우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때부터 공격을 받아왔다. 러시아군이 시 경계 가까이 다가왔지만 파괴된 장갑차량만 남기고 퇴각해야 했다.

우크라이나군이 언제까지 막아낼 수 있을 지 아는 사람은 없다. 러시아군은 탱크, 대포, 전투기로 도시 3개 방면을 공격하고 있다. 매일 사망자가 늘지만 그만큼 저항도 크다.
이 지역 주지사 비탈리예 킴이 매일 아침 메시지를 전하는 동영상을 올린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합니다”라는 말로 시작된다. 미콜라이우 주민들은 이를 두고 주지사가 안전하다고 할 때까지는 누구도 떠나지 않을 것이며 주지사가 잘자라고 할때까지는 누구도 깊이 잠들수 없다고 농담한다. 주지사는 페이스북과 텔레그램에 올리는 동영상에서 항상 평화를 기원하며 활짝 웃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 동영상을 도시 인구수에 맞먹는 50만명이 매일 본다.

주민들에게 식량을 배급하는 일을 자원해 하고 있는 나탈랴 스타니슬라우축은 “그가 웃는 것을 봐야 잘 수 있다”면서 “킴 주지사가 평안히 잘 수 있다고 말하면 평온히 잔다”고 했다.

킴 주지사는 동영상을 하루에도 여러차례 올린다. 러시아군을 바보, 악당,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오크족이라고 부르면서 주민들의 용기를 북돋는다. 동영상에도 포탄 터지는 소리가 담겨 있지만 말이다.

킴 주지사는 지난 주말 “전쟁이 시작된 지 17일째인 오늘도 기분이 끝내준다고 말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주거지에 폭격이 있었다. 그는 “우리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저들이 바라는 건 노예다. 우리는 모든 희망을 담아 승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달 전만 해도 킴 주지사는 도로를 고치고 관광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몰두했었다. 그런 그가 지금 미콜라이우 방어를 위한 군사력 동원에 몰두하고 있다. 군복 바지 차림에 허리엔 권총을 찬 모습으로 시청사에서 인터뷰를 했다.

그는 러시아군의 미콜라이우 점령 시도로 도로 곳곳에서 파괴적인 시가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도로 모퉁이마다 타이어가 쌓여 있고 화염병이 놓여 있다. 러시아군이 진입하면 주민들이 불을 질러 연기를 피움으로써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탱크를 저격하도록 돕는다.

킴주지사는 “현재 상황보다는 훨씬 더 즐겁게 보이려고 한다. 그렇다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지난 7일 새벽 러시아군의 아침 공격이 시작됐다. 사람들이 임시로 지정한 지하 대피소로 몰려든다. 매트리스와 포장지로 만든 잠자리로 가득한 곳이다.

킴 주지사는 아침 메시지에서 “저들이 우리 도시를 사람들이 잠이 든 시간에 불명예스럽게, 냉소적으로 공격했다”고 말했다.

79 우크라이나 공군 공격연대 소속 군인들 속소에 크루즈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8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됐다. 미사일이 가로수를 먼저 때리지 않았다면 피해가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보바라는 이름의 한 군인은 “포퓰라 나무가 있어서 다행이다. 우리 모두 망했을 것”이라고 했다. 미콜라이우는 전역이 비숫한 상황이다.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선 지역 주민들은 파괴된 집을 치우다가 지하대피소로 달려가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집을 치우던 마리나 바벤코는 “러시아가 우리를 어떻게 구하고 있는 지 잘 보라”고 했다. 푸틴이 해방전쟁을 벌인다고 한 걸 비꼰 말이다. “우린 잘 살고 있었고 부족함이 없었다. 저들이 지금 민간인을, 여자들과 아이들을 폭격하고 있다. 우리는 무기도 없다. 그저 숨는 일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 푸틴이 사과해야 한다고 눈물을 흘리며 분통을 터트렸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손자들이 노는 것을 지켜보던 두 할머니가 공습 사이렌이 울리는데도 수다를 이어갔다. 몇 분 지나서야 손자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느릿느릿 걷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로켓포 공격은 미콜라이우 주민들의 생활 리듬을 바꿨다. 스타니슬라우축은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우리 모두 상황을 잘 알고 서로를 돕는다”고 했다. 스타니슬라우축과 남편 알렉산드르는 키이우 인근 부차에 실내디자인 지점을 내려고 했었다. 아들 예고르가 새로 개발된 이 지역으로 이사한 때문이다.

지난주 미콜라이우 시내를 돌며 식품을 나눠주던 부부는 아들 소식에 애를 태웠다. 러시아군이 부차를 점령한 뒤 며칠 동안 지하실에 숨어 지내던 예고르가 애완토끼 디바를 데리고 탈출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했다. 스타니슬라우축은 “힘을 잃고 쳐질 때도 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 돕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보면 진리가 우리 편이기에 우리가 승리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했다.

미콜라이우 주민들 가운데 무장한 채 러시아군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많다. 온라인 뉴스 발행인 드미트리 드미트리에프는 사무실에 탄창을 가득히 쌓아둔 채 동료들과 함께 기관총을 잡고 있다.

지난 주 버스 운전사 니콜라이 빌랴슈차트는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입에 물고 러시아 T-90 탱크 엔진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전날 우크라이나군이 다리를 건너려고 시도하는 것을 파괴한 탱크였다. 빌라슈차트는 탱크를 수리해 우크라이나군에 넘겨주려는 생각이었다. “어떻게든 도움이 돼야 한다. 그냥 집에 숨어만 있지는 않겠다”고 했다.

미콜라이우의 작은 국제공항을 둘러싼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사이의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러시아군은 전쟁물자와 군인들을 보충받기 위해 공항 점령을 시도했지만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에 막혔다. 공항은 여전히 우크라이나군이 장악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배포한 동영상에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견착식 대공미사일로 저공비행하는 러시아 전투기를 요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루스란 코다 하사는 “러시아 전투기가 오는 방향을 안다면서 나타나면 ‘안녕 바보들아’라고 인사한다”고 했다.

지난 14일 킴 주지사는 저녁 동영상 메시지에서 진지한 모습이었다.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면서 “바보같은”러시아군이 로켓포로 민간인을 공격한다고 했다. “(러시아군이) 왜 그러는 지는 알 수 없지만 주도권은 우리가 쥐고 있다. 우리가 앞서가고 있다”고 했다. 전쟁 시작 18일째 되는 날 저녁 그는 “모두에게 지겨운 밤을”이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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