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8일(한국 시간) 저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화상 통화를 해 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대해 논의했다. 미중 정상의 접촉은 지난해 11월 화상 정상회담에 이어 4개월 만이다.
● 2시간 동안 러 지원 및 제재 놓고 공방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약 2시간에 걸친 통화에서 시 주석에게 “중국이 러시아에 군사 지원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군사·경제적 지원 요청을 받은 중국이 무기나 탄약 등 군수물자를 러시아에 공급하거나, 서방 제재의 충격을 줄여주기 위해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백악관은 두 정상의 통화 후 낸 설명 자료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러시아에 대한 물질적 지원을 제공할 경우 그 의미와 그것이 초래하게 될 결과에 대해 설명했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전날 언론 브리핑에서 이번 통화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중국이 러시아의 침공을 지원하기 위해 취하는 어떤 조치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러시아를 지원할 경우 미국은 해당 중국 기업에 대한 ‘세컨더리 제재’(제재 국가와 거래하는 제삼자에 대해서도 제재하는 것) 등 보복 조치를 단행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전범(war criminal)’이라고 부른 데 이어 17일에는 ‘살인 독재자’, ‘폭력배’라고 칭하며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을 전쟁 범죄자로 규정함으로써 중국의 러시아 지원 명분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시 주석은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번 사태를 대화로 해결해야 하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는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중국 관영 중앙TV(CCTV) 보도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날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위기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이라며 “갈등과 대항은 누구의 이익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평화와 안보만이 국제사회가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세계 양대 경제 강국으로서 우리는 중미 관계를 올바른 궤도로 이끌어 가야 할 뿐 아니라 세계 평화와 안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이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와 대화해야 한다”며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더 심해지면) 세계 경제에 설상가상이 되고,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바라보는 중국의 입장은 다소 복잡하다. 중국이 미국에 맞서 러시아와 ‘무한한 우정’을 과시하고 있지만 자칫 전쟁이 길어지면 중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는 꼴이 될 수 있다. 시 주석이 자신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될 하반기 당 대회를 앞두고 무리하게 러시아를 지원하다가 서방의 제재를 불러와 경제난을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중국은 서방의 제재 압박에 대해 불쾌한 입장을 숨기지 않고 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러시아 지원에 대해 경고할 것이란 미 국무부 발표에 대해 “미국의 일부 인사가 허위 사실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데 이는 무책임하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결연히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를 열거하며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식품과 침낭인가, 기관총과 포탄인가”라고 반문했다.
중국은 이번 전쟁에 대해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인정하지만 러시아의 안보 우려도 해소돼야 한다는 식의 애매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행동을 ‘침공’이라고 부르지 않고, 온라인상에서 반(反)러시아 성향의 콘텐츠도 검열을 해왔다.
● 시진핑, “대만에 잘못된 신호 주면 안 돼”
두 정상은 양국이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는 대만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시 주석은 이와 관련해 “미국 내 일부 인사들이 대만의 독립 추구 세력에 대해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며 “만일 대만 문제가 적절하게 처리되지 않으면 이는 중미 관계에 파괴적인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이 ‘미수복 영토’로 간주하고 있는 대만에 대해 미국이 독립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대해 “대만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변하지 않았으며 미국은 어떤 일방적인 현상 변경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백악관은 그러나 이날 통화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 등 한반도 안보 문제를 거론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만일 이 문제가 논의됐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이행에 동참하고 북한에 도발을 자제하도록 압력을 가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17일 브리핑에서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두 정상 통화에서) 지역 내 안보 등 다양한 주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정상은 지난해 11월 화상회담에서 양국이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대전제에 동의했지만 인권, 무역 등 구체적인 의제에서는 기존 입장을 반복하며 평행선을 달렸다. 두 정상은 각각 부통령, 부주석 시절이던 2011년 즈음 여러 차례 회담을 나누는 등 안면이 깊은 사이지만 지난해 초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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