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민들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직장을 잃고 있다고 BBC가 20일(현지시간) 전했다.
러시아 중학교 지리교사 캄란 마나플리 씨(28)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국가 선전을 그대로 따라가고 싶지 않다. 나도 내 의견이 있고 많은 교사들이 그렇다. 그건 국가의 의견과 같지 않다”는 게시물을 올리고 두 시간 뒤 학교 교장에게 ‘당장 지우지 않을 거면 일을 관두라’는 전화를 받았다.
마나플리 씨는 BBC에 “그 글을 지우고 싶지 않았고 논쟁을 벌일 가치도 느끼지 못해 사직서를 쓰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날 사직서를 쓰고 소지품을 챙기러 학교에 갔지만 아예 교내 출입을 차단당했다. 학교에 들어오지 못하는 선생님을 보기 위해 아이들이 거리로 나와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자 경찰에는 마나폴리 씨가 불법 집회를 조직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이후 교장은 그에게 왜 그런 정치적 견해를 소셜미디어에 올렸는지를 설명하라고 요구했고 마나플리 씨는 이를 거부했다.
이틀 뒤 학교는 ‘부도덕한 행위’를 이유로 마나폴리 씨에게 해고를 통보했다. 해당 학교는 학부모들에게 마나플리 씨가 고용계약을 위반했다고 통보했다. 러시아 독립언론 로바야 가제타는 심지어 마나플리 씨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은 러시아 정부가 이번 반전시위대를 대상으로 한 ‘가짜뉴스 유포 처벌법’에도 해당하지 않는 수준이라고 전했다.
● “전쟁은 못 참아, 국영기업 직장 포기”
국영 극장 체인 매니저 카트야 돌리니나 씨는 그간 국영기업이라는 특성상 정치적 견해 표출을 최대한 자제하고 살아왔다. 돌리니나 씨는 “내 일이 좋았고 잃고 싶지 않았다”며 그동안 반정부 시위에 한번도 참여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된 뒤 돌리니나 씨는 크렘린이 주장하는 ‘특별 작전’을 규탄하는 문화계 종사자들의 공개성명에 이름을 적었다. 그 역시 서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상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상사는 그에게 “서한에서 이름을 빼거나 사표를 내라”며 “둘 다 싫다면 해고”라고 말했다. 일이 커지기를 원치 않았던 돌리니나 씨는 서명 후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직장을 잃었다.
● 평화 기원했다가 사표 강요받은 인플루언서 의사
모스코바 국영병원에서 소아과의사로 일하는 안나 레바드나야 씨는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소식을 들었다. 레바드나야 씨는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에 비행기 바깥 풍경사진에 비둘기 이미지를 띄우고 “이 지옥이 어서 끝나길 바란다”고 적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200만 명이 넘는 인플루언서인 그의 게시물은 곧 병원에서 논란이 됐다. 며칠 뒤 그는 병원 센터장이 병원 직원 100여명이 참석한 회의에서 “국가의 일에 반대하는 이들은 국영병원에서 일할 자격이 없다”며 자신의 게시글을 공개 비난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동료들이 보내 준 영상에서 센터장은 수분 동안 레바드나야 씨가 국제 정세에 대해 좀 더 알았더라면 ‘특수 작전’에 대해 지지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바드나야 씨는 결국 병원으로부터 사직서를 제출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 측은 그에게 “사직서 제출을 거절한다면 해고당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그는 “더이상 일을 지속할 수 없다”는 한 문장을 적어 보냈다. 룩셈부르크에 머무르고 있는 그는 “크렘린 선전에 동의하지 않는 모든 러시아인이 이 나라를 떠날 수는 없다. 우리는 여전히 이곳에 희망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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