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남부 아조프해 연안의 마리우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최대의 격전장이다.
인구 45만명의 이 도시는 러시아가 2014년 합병한 크름반도(크림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중간에 놓여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러시아는 2014년에도 마리우폴 시민들을 상대로 투표를 통해 러시아 합병 찬성을 이끌어내려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합병에 반대한 마리우폴 시민들이 러시아의 공격에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임은 러시아군도 알고 있는 듯했다. 러시아군이 유독 마리우폴을 상대로 참혹한 초토화 작전을 벌이는 이유다.
마리우폴을 사수하는 우크라이나군과 공격하는 러시아군의 공방전이 한달 가까이 이어진 끝에 러시아군이 시내로 진입해 시가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러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크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마리우폴 시당국은 21일(현지시간)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항전의지를 불태웠다.
마리우폴에 남은 주민들은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을 피해가며 식수와 식량과 난방과 잠자리를 구하지 못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마리우폴에서 간신히 탈출한 시민들을 인터뷰해 마리우폴에 남은 사람들의 생존 사투를 전했다. 마리우폴의 비뇨기과 전문의 에두아르드 자루빈은 모든 것을 잃고 목숨만 간신히 구했다.
그가 사는 동네가 초토화됐다. 마리우폴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초토화 공격이 가장 집중된 곳이다. 러시아군 미사일이 1000명이 도피한 극장을 파괴했다. 어린이들이 지하에 대피한 예술학교도 공격했다.
물이 너무 부족해 사람들은 눈을 녹여 마신다. 난방과 전기, 가스 공급은 차단된지 오래고 사람들은 나무를 잘라서 길거리에서 이웃들과 함께 요리를 하고 있다. 거리를 지날 때마다 죽은 사람을 보게 되고 공원과 도로 중앙분리대에 만든 무덤도 많다.
지난 20일 러시아는 마리우폴의 우크라이나군에 최후 통첩을 발했다. 응하지 않으면 전멸시키겠다고 했지만 우크라이나 시당국이 거부했다. 어린이들을 포함한 피난민을 실은 버스가 21일 폭격을 당했다. 민간인 거주지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는데도 45만명의 시민들 가운데 30만명이 아직도 남아 있다.
자루빈은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승리한다면 마리우폴은 체르노빌과 같은 필수 관광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벌어진 지옥같은 현장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대도시중 한 곳인 마리우폴은 지난 3주동안 집중 폭격을 당하면서 외부세계로부터 고립돼 있다. 다만 남은 시민들이 간헐적으로 보내오는 휴대전화 사진이나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이 전하는 단편적 소식, 모든 것이 파괴되는 과정을 직접 목격한 자루빈 박사와 같은 피난민이 전하는 소식을 통해 현지 상황을 접할 수 있다. 자루빈 박사는 바닷가에 아름다운 집에서 살았다. 마리우폴의 부유층이 사는 지역이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그였다. 그러나 폭격이 시작된 뒤 아들과 함께 식수를 구하기 위해 하루 13km씩을 걸어다녀야 했다. 공격이 지속되면서 절망에 빠진 시민들이 상점을 약탈했고 집기를 가져가고 약국의 약도 집어갔다.
자루빈 박사는 “매일 매일이 달랐다. 너무 빠르게 변해서 영화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집밖으로 나가면 동네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다음 날도 전날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다”고 했다.
마리우폴시 도시계획 담당 공무원인 알베르타스 타마샤우스카스(29)는 러시아 침공 전날인 지난달 23일 도시 전역에 자전거 도로를 설치하는 방안을 최종 검토했다. 그는 마리우폴이 포위된 뒤부터 시간 개념이 사라졌다고 했다. 매일 식수를 찾고 요리에 필요한 나무를 구하는데 바빴다고 했다.
그는 “시내 공원 나무를 잘라서 화목으로 썼다. 화목은 밤이 되면 지하로 들여가야 했다. 도둑질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자동차 연료도 빼간다”고 전했다. 그는 임신한 부인과 함께 배낭 하나씩을 매고 서쪽으로 걸어서 도시를 탈출했다. 현재는 마리우폴의 북서쪽 자포리지아에 머물고 있다.
시청 직원인 이리나 페레데이(29)는 “마리우폴은 정보 공백 지역”이라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시민들을 돕기 위한 지원이 오고 있는지 아닌지 전혀 알 수 없다”고 했다. 러시아군은 시민들에 대한 인도지원도 막고 있다.
페레데이는 “사람들이 노랑색이나 갈색 물을 들고 다니는 것을 봤다. 다른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도 빗물을 받아 요리했다고 했다. “이런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 지도 알 수 없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르고 너무 힘들었다. 모두가 기회 있을 때마다 아무 물건이나 모아 둔다”고 했다. 제도와 규칙 모두 빠르게 사라졌다. 경찰이 업무를 중단했고 앰뷸런스도 다닐 수가 없었다. 폭격으로 도로에 난 구멍이 너무 많아서 차량 운행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우체국은 안치소로 변했다.
약국 운영자 세르게이 시넬니코우(58)은 폭격이 시작되면서 도시 가운데로 피신했다. 많은 사람들이 도심까지는 폭격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곳에도 집중폭격이 있었다. 부모님들이 살던 9층 건물 꼭대기에서 불붙은 커튼이 떨어지는 걸 직접 목격했다.
소방수들이 나타났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물이 없는 듯했다. 114세대의 아파트 건물은 3일동안 지속된 화재로 완전히 파괴됐다.
사람들의 일상에 새로운 패턴이 생겼다. 사람들이 아파트 앞마당에 모여 벽돌로 만든 화덕에서 함께 요리를 했다. 폭격이 시작되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시넬리코우는 “전투기 소리가 들리고 미사일과 폭탄을 떨어트리고 나면 사람들이 다시 화덕으로 몰려들었다. 하던 요리를 마치기 위해서다. 어린이들이 놀이를 하는 걸 보는 기분”이라고 했다.
시넬리코우와 자루빈은 지난 16일 마리우폴을 탈출했다. 러시아군이 최대 대피처인 극장을 폭격한 날이다. 키릴 문자로 “어린이들”이라고 글씨가 극장 밖에 커다랗게 있었는 데도 폭격을 당했다. 시민들은 서쪽으로 탈출하려고 애를 쓰지만 러시아군은 마리우폴 시민 4~5000명을 강제로 러시아 국경 넘어 타간로그로 끌고 갔다고 표트르 안드리우셴코 마리우폴 시장 비서가 밝혔다.
아버지가 러시아인인 시넬니코우는 전쟁이 시작되자 러시아의 친척들이 모스크바 남쪽 400km 떨어진 브리얀스크로 와서 지내라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했다. “러시아로 갔다면 굴욕감을 느껴 고통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서쪽으로 탈출했다. “이곳에선 고통스럽지만 지나갈 것이다. 굴욕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페레데이는 11시간에 걸쳐 도피하는 동안 러시아군 검문소 15곳을 지났다고 했다. 마리우폴에 있는 동안 배급된 음식조차 2,3일 동안 먹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탈출한 지금은 항상 배가 고프다고 했다.
자루빈 박사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했다. 마리우폴에 있던 어느 날 30여km를 걸어서 집이 있는 곳으로 갔었다. 길가에 시신들이 있었다. 집은 아직 폭격당하지 않고 남아 있었지만 동네 모든 것이 초토화됐다.
“내가 태어난 곳이어서 어릴 때부터 속속들이 아는 지역이다. 사람들이 집을 어떻게 관리하고 나무를 어떻게 키웠는지도 안다. 그 모든 것이 2주만에 파괴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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