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러시아와 서방 중 어느 편도 들지 않는다고 표방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영웅’으로 묘사하는 등 중러 관계 강화를 꾀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중국에서 러시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질 경우 정치적 통제력이 약해져 올 가을 예정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장기집권(3연임) 확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中 다큐 “푸틴, 러 자긍심 되살린 영웅”
4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중국공산당이 전국 관리들을 대상으로 101분 분량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보고 토론하는 내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 다큐멘터리는 푸틴 대통령에 대해 러시아의 자긍심을 되살린 영웅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지난해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에는 올 2월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러시아가 구소련에서 독립한 이웃 국가들의 움직임을 우려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또 푸틴 대통령이 제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위대한 전시(戰時)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는 스탈린의 위상을 복원시켰고, 러시아 국민들의 애국적 자긍심을 되살렸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이 소련을 망하게 한 정치적 독소를 청소하고 있다는 분석도 덧붙였다.
이 영상은 소련의 붕괴를 ‘서방 자유주의에 유혹당하지 말라’는 중국에 대한 교훈으로 묘사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 등으로 대표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전례를 따라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국은 소련 해체 30주년을 맞아 “소련 붕괴는 사회주의 체제 때문이 아니라 소련이 사회주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면서 “중국공산당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에 버금가는 경쟁자가 될 수 있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NYT는 중국공산당이 소련의 붕괴를 타산지석으로 강조함으로써 푸틴 대통령을 서방의 지배에 맞선 ‘동지’로 포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르게이 라드첸코 미국 존스홉킨스대 국제정치대학원 교수는 NYT에 “이 모든 사상교육에는 어떠한 표현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며 “표현의 자유는 불가피하게 정치적 통제력의 상실로 이어지고 혼란을 일으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과정에서 혼란과 경제성장 둔화에 직면한 시 주석이 정치적 통제력까지 상실할 경우 장기집권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시 주석은 10월 예정된 제20차 당대회에서 3연임 확정을 앞두고 있다. 이 때문에 당 간부들의 충성심을 유지시키는 작업이 중요한 상황이라고 NYT는 전했다.
대학들도 “우크라 전쟁 서방 때문” 사상교육
중국 대학들에서도 주입식 사상 교육이 시작됐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해외와 교류하고 있는 중국 청년들이 러시아에 관대한 중국 정부를 비판할 가능성을 의식한 것이다. 중국 사회과학원 류줘쿠이(劉作奎) 연구원은 중국 동부 지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러시아의 생존 공간을 압박하며 동진(東進)했기 때문에 전쟁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NYT는 “중국공산당 기관지 등 관영 매체들은 사설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 사태의 장본인은 러시아의 안보를 약화시킨 미국과 나토’라는 중국 지도부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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