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에서 민간인 집단 학살을 저질러 7일(현지 시간)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사실상 쫓겨난 러시아는 외교 무대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됐다. 러시아는 올 2월 2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래 유엔 총회에서 규탄 대상이 된 적은 있지만 국제기구에서 퇴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보인 인권 유린과 잔학성에 국제사회가 분노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 친러 국가들 반대에도 압도적 표차 퇴출
러시아의 인권이사회 자격 정지 결의안은 최근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러시아군의 민간인 집단 학살 증거가 드러난 것을 계기로 추진됐다. 유엔 규정에 따르면 중대하고 조직적인 인권 침해를 저지른 나라는 유엔 총회 표결을 통해 인권이사회 자격이 정지될 수 있다. 이날 결의안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저지른 인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 사례를 열거했다.
세르히 키슬리차 주유엔 우크라이나 대사는 표결 전 연설을 통해 유엔을 타이타닉호에 비유하며 결의안에 찬성해줄 것을 호소했다. 키슬리차 대사는 “우리 배는 안개 속에서 치명적인 빙산을 향해 나가고 있다. 이 배를 인권이사회가 아닌 타이타닉이라 불러야 할 것 같다”며 “인권이사회를 침몰에서 구하려면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겐나디 쿠즈민 주유엔 러시아 차석대사는 “오늘 결의안은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제 인권 상황과 관련이 없다”며 민간인 집단 학살을 거듭 부인했다. 장쥔 중국 대사도 “양쪽으로 갈라 선택을 강요하는 이런 성급한 행동은 유엔 회원국 간 분열을 심화할 것”이라며 결의안에 반대했다. 김성 북한 대사도 결의안을 “정치적 책략”이라고 비난하는 등 친러시아 성향 회원국들은 반대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결의안은 찬성 93표, 반대 24표라는 넉넉한 표차로 가결됐다.
다만 지난달 유엔 총회에서 140개국 이상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러시아 규탄 결의안 2건에 비하면 후퇴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체 193개 회원국 중 100개국이 반대나 기권,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가 표결 전 다른 회원국에게 결의안 반대를 요청 또는 압박한 영향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 인권침해국이 여전히 이사국 지위 유지
유엔 인권이사회(UNHRC)는 세계 각국 인권 상황을 감시, 해결하는 유엔 대표 기구다. 1946년 유엔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인권위원회로 출범해 2006년 지금의 이사회로 승격됐다. 3년 임기인 이사국은 현재 47개로 투표를 통해 순차적으로 선출, 교체된다. 인권이사회 결정은 법적 강제력은 없지만 국제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북한 인권 침해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매년 채택하기도 하다.
그러나 인권이사회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많은 인권침해국이 이사국으로 활동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회기에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과 베네수엘라 수단 에리트레아 등 인권 유린 의혹이 있는 나라들이 이사국이다. 이 국가들은 자국 인권 상황을 미화하고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이사국 지위를 이용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날 결의안 통과 후 린다 토머스그린필드 주유엔 미국 대사는 “지속적이고 극심한 인권 침해국은 유엔 인권기구를 이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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