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현지 시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습을 받은 우크라이나 동남부 도네츠크주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에서 구사일생으로 생존한 블라디슬라프 코피츠코(27)는 미 워싱턴포스트(WP)에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당시 어머니와 열차를 기다리던 코피츠코는 갑작스런 굉음과 함께 섬광이 번쩍이자 엄청난 충격을 받고 튕겨져 나갔다. 거의 동시에 그의 몸 위로 함께 다른 피란민들 시신 여러 구가 포개졌다. 곧 추가 폭발이 이어져 사방으로 파편이 튀었고 시신 속에 파묻힌 탓에 치명상을 피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주변에선 시신 5구가 발견됐다. 온몸에 파편이 박힌 크피치코는 “사람들이 완전히 갈기갈기 찢어졌다”고 했다.
당시 기차를 기다리던 주민 옐레나 칼렌몬바는 “폭발 직후 ‘엎드려’ 소리에 바닥에 누웠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갈기갈기 찢어진 팔다리와, 살점, 뼛조각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한 노인이 다리를 잃고 신음했다”고 말했다.
● 러 미사일에 적힌 ‘어린이들을 위하여’
9일 우크라이나 당국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공습으로 최소 52명이 사망하고 98명이 다쳤다. 당초 사망자가 39명으로 알려졌으나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가 계속 늘고 있다. 공격 당시 기차역에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피란을 가기 위해 역사에 몰려 있었다.
생존자들은 미사일이 최초 폭발한 후 4, 5차례 추가 폭발이 있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폭탄 안에 새끼 폭탄 수백 개가 들어있는 대량살상 무기인 ‘집속탄’이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역과 승강장 곳곳에서는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있고, 주인 잃은 가방과 인형 등 장난감이 흩어져 있었다.
현장에서 발견된 러시아군 미사일에는 러시아어로 ‘어린이들을 위해’라고 쓰여 있었다. CNN은 “돈바스 지역의 친러 세력들은 ‘우크라이나군이 나치에 경도돼 지역 내 어린이들을 위협한다’고 주장해왔는데 러시아가 이들의 주장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이번 기차역 공습으로 최소 4명의 어린이가 사망했다.
수도 키이우 인근 도시인 마카리우에서도 러시아군이 민간인을 132명 이상 살해했다고 우크라이나 측은 밝혔다. 마카리우는 러시아군이 한동안 점령했던 곳이다. 바딤 토카르 마카리우 시장은 9일 “러시아군이 쏜 총에 맞은 시신들을 현재 한 곳에 수습하고 있다”고 했다.
● 러軍 상관 “민간인도 다 죽여” 지시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만행을 뒷받침하는 증거도 속속 나오고 있다. 9일 CNN이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으로부터 제공받아 공개한 음성파일에 따르면 러시아군의 병사가 상관에게 “군 차량인지 확실하지 않다. 두 명이 나왔는데 민간인 복장이다”라고 보고하자 상관은 “필요 없고, 다 죽여”라고 소리를 지른다. 병사가 “알겠다. 하지만 이 마을에는 민간인밖에 없다”고 하자 상관은 “대체 왜 그러나. 민간인이어도 다 죽여”라고 재차 지시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크라마토르스크 기차역 공습에 대해 “공격 배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전 세계의 노력으로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 분명히 밝혀질 것”이라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기차역 공격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려는 민간인을 끔찍한 잔혹행위”라고 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인명 피해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비열한 짓”이라고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가까웠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마저 9일 “푸틴의 행동에 크게 실망했다는 점을 숨길 수도 없고, 숨기고 싶지도 않다. 푸틴이 모든 책임을 져야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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