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땐 대피” 불안감속 지켜봐
카페 460곳 문열고 술 판매 등… 러 퇴각으로 6주만에 일상 기지개
9일(현지 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있는 레샤 우크라이나 국립학술극장. 어두운 무대 중앙에 한 줄기 조명이 내린다. 빛줄기 안에서 춤추는 배우는 아이보리 옷에 붉은 허리띠를 둘렀다. 관객들은 숨 죽여 그 몸짓에 집중했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도시 곳곳이 파괴되고 학교나 극장 같은 문화시설도 폐허가 된 지 6주 만이었다.
11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러시아군이 퇴각한 틈을 타 집과 일터로 돌아온 키이우 시민들의 삶을 조명했다. 이들은 일상을 되찾기 위해 다시 청소하고 요리하며 아이들을 먹이고 예술 활동을 펼쳤다.
레샤 극장 공연은 평온하지만은 않았다.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모든 배우와 관객은 근처 지하철역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하지만 연극에 앞서 무대에 오른 올렉산드르 트카첸코 문화부 장관은 “예술이 상처를 치유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키이우에서는 슈퍼마켓 900곳 이상, 카페 460여 곳이 다시 문을 열며 도시가 활기를 되찾아갔다. 드니프로강 주변에서 시민들은 조깅을 했고 술 판매와 지하철 운영도 재개됐다.
지난달 우크라이나 서부로 대피했던 이리냐 스토니엔코비호프스카 씨(28)는 남편과 아들 다비드(7), 딸 에스테르(3)를 데리고 돌아왔다. 다비드가 다니던 학교는 폭격으로 무너졌다. 이리냐 씨는 “아이들이 건물 잔해나 시신 등을 못 보게 하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다비드는 길을 걷다가 종종 엄마에게 “지뢰가 있으면 어떡해”라고 묻는다.
키이우에서 스테이크 식당을 하는 올하 아키자노바 씨(28)는 인근 병원 환자와 의료진을 위해 매일 음식 150인분가량을 만들기 시작했다. “환자는 350명인데 조리사는 2명뿐이라네요.” 그의 식당은 부차의 식료품업체에서 고기와 해산물을 공급받아 왔으나 그 업체 물류창고가 러시아군의 공격에 타버렸다. 아키자노바 씨는 “러시아군이 철수하면 ‘구운’ 요리는 얼마든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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