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개전 두 달이 되도록 승기를 잡지 못하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사진)의 최측근 사이에서도 ‘이번 침공은 재앙적인 실수였다’는 후회와 탄식이 나오고 있다고 20일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가 국채 이자를 달러화가 아닌 자국의 루블화로 상환한 것은 채무불이행에 해당한다는 국제 금융기관의 결정까지 나오면서 러시아는 첫 디폴트(국가 부도) 위험에 놓이게 됐다. 미국과 서방의 제재로 국가 경제가 흔들리자 러시아 내부에선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위원회 비서관 등 극소수 강경파가 침공 결정을 주도했으며 푸틴 대통령이 이들의 말만 듣고 있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 크렘린 내부에서도 “푸틴, 치명적 오판”
블룸버그는 러시아 정부 및 국영기업 고위 관계자 10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러시아 대통령실(크렘린궁) 내부에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침공은 러시아를 수십 년 전으로 후퇴시킬 수 있는 치명적인 실수”라고 전했다. 이들은 푸틴 대통령의 보복이 두려워 모두 익명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응답자들은 푸틴 대통령이 침공 후 오로지 강경파만 만나고 있으며 전쟁으로 인한 경제·사회적 피해를 우려하는 관료들의 목소리는 일축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의 장기화 이유 또한 강경파들이 제한적 정보에 근거해 잘못된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이 이번 침공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미국 정보당국의 경고처럼 핵무기를 사용할지 모른다고도 우려했다.
일부 응답자는 미국 등 서방 주요국이 단행한 전방위적 경제 제재의 속도와 강도에 푸틴 대통령과 최측근들이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수십 년간 러시아에 투자한 서구 기업들이 단 하룻밤 만에 사업을 접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푸틴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지도자의 역량을 과소평가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보요원 출신인 푸틴 대통령이 각별히 여기는 연방보안국(FSB) 내부에서도 이번 전쟁에서 사실상 패했다는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 104년 만에 첫 국가부도 임박
러시아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국제스와프파생상품협회(ISDA) 산하 신용파생상품결정위원회(CDDC)는 20일 “이달 초 러시아가 달러 표시 국채 2건의 이자를 루블화로 상환한 것은 변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가 상환 유예기간이 끝나는 다음 달 4일까지 달러화로 이자를 지불하지 못할 경우 디폴트에 처한 것으로 간주된다. 1918년 소련 수립 이후 처음 국가부도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앞서 러시아는 미국 내 은행에 보유 중인 자국 달러가 제재로 동결되고 국제금융결제망 ‘스위프트’에서도 퇴출당하자 “이자를 루블화로 내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20일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서방의 경제 제재에 겁먹은 국민들이 지난달에만 은행 계좌에서 98억 달러(약 12조1275억 원)의 외환을 인출했다. 엘비라 나비울리나 중앙은행 총재는 “서방의 금융 제재보다 공급망 봉쇄가 더 뼈아프다. 공급망이 무너지고 재고가 소진되면 물가가 치솟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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