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 주, 중간선거 앞 경쟁적 감세
민주당 소속 주정부들도 적극 가세
향후 경기 둔화땐 재정악화 우려
전문가 “감세가 인플레 부추길 것”
40년 만의 인플레이션에 신음하는 미국 주(州)정부들이 감세(減稅) 조치를 쏟아내고 있다. 치솟는 물가에 대응해 가계 가처분소득을 늘려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은 사실상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이런 조치가 물가를 더 올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미국 노동부가 11일 발표한 4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8.3%로, 비록 전달(8.5%)보다는 상승세가 꺾였지만 전문가 예상치인 8.1%보다 높았다. 에너지와 식료품을 제외한 근원 물가지수도 6.2% 올라 시장 전망치(6.0%)를 넘어섰다.
미국의 감세 논란은 물가 상승에 시달리는 한국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윤석열 대통령도 당선 전 발표한 수십조 원 규모의 현금 복지와 감세 공약을 그대로 이행한다면 물가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을 받은 바 있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10일 싱크탱크 택스파운데이션 집계 결과 현재 약 30개 주정부가 주민 인플레이션 부담을 덜기 위해 세금 감면을 시행하거나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지난주 공화당 소속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주정부 재정 여유분을 활용한 12억 달러 규모 감세안에 서명했다. 뉴멕시코주도 지난달 가구당 1000달러(약 128만 원)씩 세금 환급을 결정했고 아이오와 인디애나 아이다호주는 올 들어 소득세를 감면했다.
감세는 보수 성향 공화당 단골 정책이지만 집권 민주당 주정부도 가세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휘발유 가격 급등에 대응해 다음 달부터 유류세를 절반 감면하기로 했다. 펜실베이니아주도 법인세율 인하를 추진 중이다. 캔자스주는 식료품 판매세 감면을 검토한다. 대규모 감세는 지난해 연방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대응 예산 3500억 달러를 배분해 주정부 재정이 탄탄해졌기에 가능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감세 정책이 국민 지갑을 두껍게 함으로써 소비를 자극해 가뜩이나 높은 물가를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는 “주정부 감세는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것으로 본다”며 “문제는 이로 인한 물가 상승은 국가 차원 문제인 반면에 그 혜택은 각 주에 귀속된다고 주지사들이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주정부는 물가를 끌어내려 유권자 표심을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감세를 추진하지만 국가 전체에는 인플레이션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얘기다.
주정부 감세가 재정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지난해까지 이어진 경제성장과 연방정부 지원으로 재정은 흑자이지만 향후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의 양적 긴축으로 경기가 둔화돼 세수가 줄어들면 감세 조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도 최근 “불안한 경제 환경에서 감세 조치가 한꺼번에 이뤄진다면 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물가 상승이 현재 미국인의 가장 큰 고민거리라는 점에서 감세 카드는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한 조시 셔피로 주 법무장관은 “유권자는 물가가 가장 큰 걱정이고, 정치인에게 해법을 원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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