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간 21일 첫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을 군사안보 동맹에서 경제는 물론이고 첨단기술과 공급망 동맹으로 확장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이로써 새 정부 출범 이후 한미 관계는 한반도에 국한하는 대북 억지 동맹을 뛰어넘어 안보, 경제, 첨단기술, 공급망을 망라하는 글로벌 동맹으로 격상할 것으로 전망된다. 바이든 행정부의 글로벌 동맹 구상이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 간 경제·첨단기술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세계 공급망에서 배제하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한중 관계 재정립이 불가피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9일 브리핑에서 “공급망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미국과) 일종의 공급망 동맹 체제가 필요하다. 경제안보의 핵심적인 부분”이라며 “미국은 (정치 군사안보 중심의) 가치 동맹에서 기술 동맹으로 변하고 있고 이를 우리가 같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18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기후와 에너지, 기술부터 경제 성장과 투자까지 한미 글로벌 동맹의 진짜(truly) 본질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리번 보좌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수천 개 양질의 미국 일자리를 창출한 한국의 기술 및 제조업 리더들과 만날 것”이라고도 했다.
설리번 보좌관은 한일 순방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의 첫 번째 인도태평양 지역 방문”이라며 “결정적인 시점(pivotal moment)에 이뤄졌다”고 했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은 두 핵심 안보 동맹을 강화하고 활발한 경제 파트너십을 심화하며 두 민주주의 동료와 21세기로 가는 길의 규범(rule)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번 순방이 “안보부터 경제, 기술, 에너지, 인프라 투자까지 바이든 대통령이 구상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전모를 보여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대통령실은 전날 바이든 대통령 방한을 계기로 한미 기술 동맹이 추가될 것이라며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기 위한 미 주도 경제연합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겠다고 했다. 한미 정상은 또 이번 정상회담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 협력도 공식화한다.
백악관은 바이든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 소식통은 “바이든 대통령이 부통령 시절 방문한 DMZ 대신 새로운 곳을 방문하고 싶다는 의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DMZ가 아니라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방문을 선택해 한미 첨단기술 동맹을 부각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한미 경제안보 핵심은 공급망 동맹”… 차세대 원전 협력도 논의
“지금은 공급망을 제대로 관리하려면 (미국과) 일종의 동맹 체제가 필요하다. 공급망 동맹이 경제안보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19일 이틀 앞으로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인 경제안보를 설명하며 ‘공급망 동맹’이라는 말을 꺼냈다. 전날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미 동맹에 (그간의 군사·경제 동맹에 이어) 기술 동맹이 추가될 것”이라고 말한 것의 연장선상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한미 간 협력 의제와 범위를 확대하는 한미 동맹의 확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1953년 북한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맺은 한미 간 군사적 혈맹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대북 억지 동맹을 뛰어넘어 안보, 경제, 첨단 기술, 공급망을 망라하는 글로벌 동맹으로 확장시키겠다는 뜻이다. 새로운 경제·무역 환경에서 중국의 패권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과 한미 공조 체계를 강화해 국내외 안보, 경제 리스크에 대응하려는 한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 韓美 “기술-공급망 포괄 동맹 확장” 한목소리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한미 동맹의 확장과 관련해 “미국은 민주주의 가치 동맹을 기술 동맹으로 전환하는 축으로 (글로벌 동맹을) 변화시키고 있다”면서 “그런 축에 우리가 같이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주도로 23일 출범하는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한국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려는 배경에 대해서도 기술 동맹의 의미를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미래의 신기술에 대해 (미국과) 협력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 이것이 일종의 기술 동맹으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글로벌 공급망의 네트워크는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데 기술 유출, 지식재산권, 디지털 규범 등에서 우리가 빠져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이를 국제 규범으로 채워 나가야 되기 때문에 IPEF (참여)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미 백악관도 한미 정상 간 첫 정상회담에 대해 19일(현지 시간) “기후와 에너지, 기술부터 경제성장과 투자까지 한미 글로벌 동맹의 진짜 본질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세계적인 기술주권 확보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친환경 녹색기술 등 핵심 기술을 두고 한미가 상호 협력해 대처한다는 의미가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21일 한국에 입국한 직후 윤 대통령과 함께 경기 평택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찾는 것도 이 같은 기술 동맹을 과시하려는 행보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소형모듈원자로(SMR) 등 차세대 원전 기술 협력도 공식화할 계획이다. SMR는 하나의 모듈에 원전의 모든 기능이 담겨 미래 에너지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 대중 마찰 우려 나오자, 대통령실 “과민반응”
문제는 한미 동맹 강화 및 확장으로 예상되는 중국과의 마찰이다. 일각에선 ‘제2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라고 할 만한 중국의 보복을 우려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윤석열 정부의 대중 외교는 상호 존중, 즉 당당한 외교이며 그 원리에 따라 이뤄진다”며 “(IPEF가) 협정이 아니고 참가국 간 협력 플랫폼을 만드는 건데 너무 민감하게 ‘과민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이어 “중국을 절대로 배제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중국이 민감해하는 디지털 규범과 관련해서는 “디지털(분야)을 중국이 열면 된다. 중국이 제도를 바꾸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와 인권을 검색하면 중국 국민들이 보는 것을 (중국 정부가) 싫어한다. 중국이 계속 그렇게 갈 것인지는 중국의 선택이다. 우리가 (중국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건) 중국의 선택”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