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의 어느 밤 미국 남동부 조지아주 서배나의 특급 호텔. 2019년 1월부터 재임 중인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59·공화)와 보좌진이 몇 시간째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들은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사진)이 미국에 건설할 전기차 공장의 후보지 실사 방문을 하루 앞둔 이날 후보지 브라이언카운티 인근에 있는 이 호텔에서 초조하게 대기했다. 당시 조지아는 테네시,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등과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보좌진 중 한 명은 지나치게 긴장해 켐프 주지사가 직접 진정시켜야 했다.
조지아 현지 매체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AJC)’은 현대차 공장을 유치하기 위해 조지아주가 전방위적 노력을 들였다는 후일담을 23일 보도했다. 켐프 주지사는 취임 후 첫 해외 방문지로 한국을 택했고 팻 윌슨 주 경제개발장관은 한국을 10차례나 찾아 현대차를 설득했다. 그 결과 현대차는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방한 중이던 21일 “2025년 상반기 가동을 목표로 브라이언카운티에 연 30만 대의 전기차 생산이 가능한 공장을 짓겠다”고 밝혔다.
○ 지난해 12월부터 비밀 협상
조지아주와 현대차의 협상은 지난해 12월 시작됐다. 기밀 유출을 우려해 기업명을 대다수 주정부 직원에게도 노출하지 않은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했다. 특히 부지 자체가 외딴곳에 위치해 소문이 날 위험이 적었고 주정부가 해당 부지를 매입한 것도 비밀 협상을 하는 데 용이했다. 사유지 수용 등 번거로운 절차가 필요 없어 양측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2월 정 회장이 전세기로 공장 부지를 방문했을 때였다. 켐프 주지사와 공무원들은 유치 가능성이 높다는 내부 평가에도 자만하지 않았다. 차분히 만반의 준비를 갖추며 정 회장의 선택을 기다렸다.
켐프 주지사는 정 회장과 오랜 인연이 있다. 그는 2019년 한국 방문 당시 하루를 투자해 기아를 방문했고 당시 총괄수석부회장이었던 정 회장과 고급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정 회장이 2020년 그룹 회장으로 승진했을 때는 곧바로 축하 편지를 보냈다. 윌슨 장관 또한 현대차 관계자가 서배나를 찾을 때마다 동행했다. 모든 질문에 능숙히 답하면서 현대차의 환심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현대차는 4월 투자의향서를 조지아주에 제출하며 사실상 부지 선정을 마무리했다. 당시 켐프 주지사와 보좌진은 크게 환호했다. 트레이 킬패트릭 주지사 비서실장은 아예 ‘대박(boom)’이라고 외쳤다.
○ 해외 기업 유치에 올인
해외 기업을 유치해 주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조지아주 공무원들의 열성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2019년 SK온의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유치할 때도 조지아 주정부는 SK 측 제안에 새벽에도 번개같이 일처리를 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이번 현대차 공장 유치를 위해서도 세제 혜택 등 다른 주들이 공통으로 내놓는 인센티브 외에 공무원들의 기업 친화적인 태도를 적극 어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아주는 2006년 브라이언카운티에서 약 200km 떨어진 웨스트포인트에 기아 공장을 유치했다. 그러나 이후 최근까지 해외 기업 유치에 몇 차례 고배를 마셨다. 특히 2015년 스웨덴 볼보 공장을 인근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빼앗기는 바람에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대단했다.
주 정치권도 초당적 노력에 가세했다. 모두 집권 민주당 소속인 조지아주의 존 오소프 상원의원, 래피얼 워녹 상원의원 또한 현대차 유치에 공을 들였다. 오소프 의원은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정 회장을 만났다. 두 의원은 21일 현대차의 발표 직후 “현대차의 수십억 달러 투자가 수천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조지아주의 명성을 높일 것”이라며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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