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이 열린 도쿄 아사카가 영빈관에서 일본 기자들은 대규모 미국 수행단과 경호차량들을 보며 “대단하다”는 감탄사를 연발했다. 한 일본 기자는 “외무성에 출입하며 영빈관 취재를 여러 번 했지만 오늘처럼 북적인 건 드물었다”며 “미일 정상회담은 다른 행사와 확실히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언론과 달리 해외 언론사는 바이든 대통령 방일 이틀 전인 20일 외무성에 취재 신청서를 내야 했다. 본보를 비롯해 AP AFP 그리고 중국 매체들이 취재 허가를 받았다. 취재 24시간 전 발급받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 ‘음성’ 증명서 제출로 취재 신청 절차는 마무리됐다.
○ 손님맞이 영빈관, 삼각형 레드카펫
외무성 안내에 따라 미일 정상회담 취재 기자들은 23일 오전 10시 아카사카 영빈관 동문에 집합했다. 아카사카 영빈관은 1909년 일본 왕세자가 살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지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인 1948년 국유재산으로 환수돼 국회도서관, 법무성 일부, 1964년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 청사 등으로 쓰이다가 1968년 리모델링을 하고 외국 귀빈을 맞이하는 영빈관으로 탈바꿈했다.
취재 신청 여부 및 신분증 확인을 마치자 모든 절차를 마쳤다는 의미로 상의에 분홍색 리본을 달았다. 영빈관 앞 광장에 들어서자 양국 정상을 맞이하기 위해 하얀 제복을 입은 일본 자위대 의장대가 긴장한 모습으로 도열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광장 중앙에는 레드카펫이 커다란 삼각형 모양으로 깔렸다. 광장 한쪽에는 카메라 기자들이 의장대 사열 촬영 준비에 부산했다.
기자들이 영빈관에 들어오고 약 10분 뒤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모습을 드러내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했다. 기자들은 영빈관 복도 유리창 너머로 이 장면을 지켜봤다. 이날만큼 규모가 크고 화려하게 정상을 맞이하는 일이 흔하지 않다 보니 일본 취재기자들도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사진을 찍었다. 일부 기자는 의장대가 연주하는 환영 음악 멜로디를 따라 흥얼거렸다.
○ “땡큐” 외치며 영빈관 퇴장 요청
10분이 안 되는 의장대 사열을 마치고 미일 정상이 입장하자 본격적인 취재 경쟁이 시작됐다. 유럽 르네상스풍 서양화가 그려진 천장 등 영빈관 내부는 화려했지만 113년 된 건물이어서 그런지 복도가 좁아 양국 수행단 취재진이 뒤엉켜 제대로 이동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 북새통에 미국 기자 몇몇은 영빈관 곳곳을 스마트폰으로 찍었다.
두 정상만의 일 대 일 대화가 끝나고 오전 11시 반경 시작된 소인수 회담은 취재진에 공개됐다. 양국 정상이 테이블 위 화분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양국 실무 수행원들이 “생큐” “아리가토(고맙다)”를 연발하며 기자들에게 나가 달라고 요청했다. 이들은 한 마디라도 더 듣고, 한 컷이라도 더 찍으려는 기자들에게 손을 휘저으며 취재를 마쳐달라고 했다.
밖에서 기다리다 오후 1시 반경 다시 영빈관으로 복귀했다. 모두발언 때보다 수십 명 많은 기자들이 기자회견장에 몰렸다. 약 100석이 마련된 기자회견장은 정확히 절반씩 나뉘어 오른쪽은 일본 측, 왼쪽은 미국 측 기자들이 앉았다. 외무성 취재 허가를 받은 동아일보는 일본 측 자리에 앉았다.
○ 바이든 “예스” 발언에 기자들 웅성웅성
취재진 휴대전화 전파가 차단된 뒤 미일 정상이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왔다. 기시다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에 우려를 표하고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 의향을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복귀하길 기대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TPP 복귀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않은 채 굳건한 미일동맹을 재확인한다고 말했다.
일본 기자들은 기시다 총리에게 중국에 대한 우려, IPEF 참여 방침 등을 질문했다. 미국 기자들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만 유사시 미국의 군사적 개입 여부를 묻는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바이든 대통령이 “그렇다(Yes). 그것이 우리 약속이다(That‘s the commitment we made)”라고 답하자 기자회견장이 일순간 술렁이며 웅성거림이 회견장 전체로 퍼졌다. 미국의 대만에 대한 외교정책인 ’전략적 모호성‘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추가 질문할 겨를도 없이 대만 관련 질문을 끝으로 양국 정상 공동 기자회견은 끝났다. 기자 100여 명에게 주어진 질문 기회는 일본 측 2회, 미국 측 2회가 전부였다. 기자 옆에 앉은 일본 기자는 아쉬운 표정으로 질문이 적힌 메모지를 양복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영빈관 건물을 나서자 현관 앞에 미국 대통령 공식 의전차량 캐딜락 원, 일명 ’더 비스트(The Beast)‘를 비롯해 경호 및 수행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미일 정상회담이 아니면 보기 힘든 명물같은 장면이었지만 기자들은 바쁘게 스마트폰을 꺼내 본사로 전화하며 바이든 대통령의 발언을 속사포같이 전했다. 복도에 쭈그려 앉아 노트북으로 기사를 송고하는 기자들도 적지 않았다. 역사적인 미일 정상회담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