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중한 은행 금고처럼 생긴 대형 냉동고의 문을 열자 영하 20도의 한기와 악취가 새어 나왔다. 냉동고 안에는 검은색, 흰색 비닐 가방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군데군데 핏자국이 선명했다. 가방 지퍼가 열린 틈으로 진흙투성이인 군화와 위장 무늬의 군복이 보였다. 이 가방들은 시신을 담는 일명 ‘시신백’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숨진 러시아 병사 62명의 시신이 이 냉동고에 보관된 상태였다.
지난달 30일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에서 활동 중인 우크라이나군 소속 ‘시신 수습팀’의 활동상을 전했다. 이들은 조국을 침공했다가 숨진 적군의 시신을 수습해 보관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수습팀 대원은 전쟁 중 군인의 신분을 드러낼 수 없다며 스스로를 호출부호 ‘서머(Summer)’라고 밝혔다. 그는 “방역과 위생 문제 때문에 러시아군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퇴각하면서 우크라이나 거리 곳곳에 한 달 이상 방치한 러시아군 병사들의 시신이 심각하게 부패하고 있으며, 일부는 개가 뜯어먹고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병사 2명으로 구성된 수습팀은 러시아군 시신을 발견하면 얼굴, 문신, 소지품 등으로 신원 확인 작업을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잔학행위를 저지른 전범(戰犯) 용의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면봉으로 DNA도 채취한다. 이후 시신은 열차 안에 마련된 냉동고로 옮겨져 보관된다. 수습팀과 열차 승무원들은 냉동고 옆의 열차 칸에서 숙식을 한다.
러시아가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현재까지 최대 3만 명 이상의 러시아 병사가 숨진 것으로 우크라이나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 여론 등을 우려해 전사자 시신 수습에 나서지 않고 있어 오히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전사자들의 시신을 대신 수습하고 있다.
수습팀은 비록 적군의 시신이지만 망자(亡者)에 대한 예를 갖춰 수습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수습팀 병사는 “내 임무는 이 시신들을 유가족의 품으로 온전히 돌려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을 정중히 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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