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간 영국을 위해 헌신한 여왕에게 찬사를 보냅니다. 100세까지 왕위를 지켰으면 좋겠어요.”
2일 오전 11시 영국 런던 중심부 ‘세인트제임스’ 파크에는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공원 한쪽에선 260여 년 전통을 지닌 왕실 근위대가 행진을 시작했다. 상공에서는 영국 공군 전투기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96)의 즉위 70주년을 상징하는 ‘70’ 모양으로 비행했다. 이날부터 5일까지 나흘간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가 개막했다.
여왕은 이날 서쪽 버킹엄궁 발코니에 사촌 동생 켄트 공작(87)과 함께 나왔다. 이어 찰스 왕세자(74)와 커밀라 왕세자빈, 윌리엄 왕세손(40)과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40), 왕세손 부부의 자녀 등까지 왕실 가족이 모두 발코니에 등장했다. 이를 바라보던 군중 사이에선 “와” 하며 함성이 터져 나왔다. 1952년 즉위 후 70년간 냉전, 경제위기,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왕실 가족을 둘러싼 갖가지 사고, 군주제 폐지 여론 등에도 최장기간 왕위를 지킨 여왕에 대한 영국민의 존경이 느껴졌다. 다만 건강 악화, 왕위 계승 1순위인 장남 찰스 왕세자에 대한 국민 지지가 여왕보다 훨씬 낮은 현실이 겹쳐 ‘포스트 여왕’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이날 행사 전 여왕은 트위터에 “(국민들이) 보여준 호의에 힘을 얻었다. 70년간 이룬 모든 것을 되돌아볼 기회가 있기를 희망한다”는 글을 올렸다.
○ 시민들 “왕실 아니라 여왕이 국민의 구심점”
이날 여왕은 지팡이를 짚은 채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왕실 전속 디자이너 앤절라 켈리가 만든 일명 ‘더스키 도브 블루(dusky dove blue)’ 상의에 연보라색 모자를 쓴 여왕이 등장하자 기자 옆에 있던 런던 시민 그레이슨 씨는 “여왕은 역시 패셔니스타”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또 다른 시민 테일러 씨도 “왕실이 아닌 여왕이 국민의 구심점”이라며 “100세까지 군주 자리를 지켜주기를 바란다”고 반겼다.
이날 행사를 앞두고 영국에서는 여왕의 참석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등으로 지난해부터 공개석상 등장이 눈에 띄게 줄어든 여왕이 이날 행사에 참석하지 못할 정도라면 더 이상 공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는 뜻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BBC 등은 전했다.
지난해 초 왕실 탈퇴 선언을 한 후 미국으로 이주한 해리 왕손(38)과 메건 마클 왕손빈(41) 부부도 이날 퍼레이드 등 행사를 봤다. 하지만 버킹엄궁 발코니에는 등장하지 않았다.
○ ‘포스트 엘리자베스’ 불안감 공존
이날 런던 곳곳에는 국기 ‘유니언잭’을 머리에 꽂거나 몸에 두른 인파가 가득했다. 여왕의 대관식이 열렸던 웨스터민스터 사원은 오후 내내 축하 종을 울렸다. 이날 저녁에는 버킹엄궁 앞에서 토종 나무 350개로 구성된 21m의 대형 조형물 ‘트리 오브 트리스(Tree of Trees)’가 점등됐다.
행사 마지막 날인 5일에는 1762년 제작된 길이 7m, 무게 4t의 ‘황금마차’가 퍼레이드에 등장한다. 여왕은 영국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이 마차를 1953년 대관식 당시 왕궁에서 대관식 장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 이동할 때 탔다.
런던 시민들은 ‘포스트 엘리자베스 시대’를 맞이해야 한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는 분위기였다. 일간 더타임스는 이번 행사 후 후계 구도 논의가 본격화할 것으로 봤다. 여왕이 많은 논란을 일으킨 찰스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혔음에도 그는 아들 윌리엄 왕세손보다 낮은 지지를 얻고 있다.
여왕이 퇴위하면 군주제의 존속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5월 유고브 여론조사에서 18∼24세 응답자의 41%는 “선거로 뽑힌 국가원수가 나와야 할 때”라고 답했다. 데일리미러는 플래티넘 주빌리 행사에 2800만 파운드(약 440억 원)의 세금이 든다며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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