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전 시간 멈춘 후쿠시마… 돌아온다는 주민, 7000명 중 57명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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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주변 마을 르포]日정부, 이르면 이달 ‘피난 해제’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여파로 원전에서 3km가량 떨어진
 후타바미나미 초등학교에선 재학생과 교직원이 모두 피난을 떠났다. 당시 급하게 대피하느라 책상 서랍이 열린 상태로 어질러진 
교무실은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그 모습으로 남아 있다. 칠판의 일정란에는 사고 당일이었던 3월 11일엔 글씨가 빼곡하지만 
왼쪽 3월 14일에는 ‘특별히 없음’이라고만 쓰여 있다. 후타바=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 여파로 원전에서 3km가량 떨어진 후타바미나미 초등학교에선 재학생과 교직원이 모두 피난을 떠났다. 당시 급하게 대피하느라 책상 서랍이 열린 상태로 어질러진 교무실은 11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때 그 모습으로 남아 있다. 칠판의 일정란에는 사고 당일이었던 3월 11일엔 글씨가 빼곡하지만 왼쪽 3월 14일에는 ‘특별히 없음’이라고만 쓰여 있다. 후타바=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후타바=이상훈 특파원
후타바=이상훈 특파원
일본 도쿄에서 북동쪽으로 270km가량 떨어진 후쿠시마현 후타바정(町).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폭발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와 마을 중심지가 불과 5km 떨어져 있다. 당시 방사성물질 유출에 따른 일본 정부의 피난 지시 후 마을 전체가 출입·숙박이 금지된 ‘귀환곤란구역’으로 지정됐다. 주민 전원이 피난을 갔고, 현재까지도 주민이 ‘0명’이다.

기자가 2일 방문한 마을 내 후타바미나미 초등학교는 11년 전 그날의 모습으로 멈춰 있었다. 지진으로 피난 지시가 내려진 2011년 3월 11일 수업 일정이 분필로 적힌 칠판과 대피한 아이들이 두고 간 가방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고 전 재학생 196명이 다니던 꽤 큰 시골 초등학교였지만 이제는 잡초만 무성하다.

후쿠시마 1원전에서 3km 떨어진 후타바미나미 초등학교의 방사선량은 이날 시간당 0.171μSv(마이크로시버트). 피난 지시 해제 기준(시간당 3.8μSv)을 밑돌았다.

일본 원전 피해의 상징적 장소인 후타바정은 이르면 이달 중에 일본 정부의 피난 지시가 공식 해제된다. 마을 내 거주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제염(오염물질 제거)과 폐기물 처리로 성공적인 환경 재생이 이뤄졌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주민들에게 마을 복귀 신청을 받아본 결과 돌아오겠다는 주민은 전체 7000여 명 중 57명에 불과했다.

마을 곳곳 방사성 폐기물…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올 수 있나”


피난지시 해제로 거주 가능해져도 농사 어렵고 생활 기반시설 부족
피난민 60% “돌아가고 싶지 않다”… 폐기물 저장시설 여의도 5배 면적
언제 어떻게 처리할지 아직도 몰라


검은 자루에 담긴 방사성 폐기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설치된 방사성 오염물 중간저장시설에 검은 자루에 담긴
 폐기물이 쌓여 있다. 일본 정부는 2045년까지 후쿠시마현 밖으로 폐기물을 최종처분하겠다고 법을 정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세우지 못했다. 후타바=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검은 자루에 담긴 방사성 폐기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인근에 설치된 방사성 오염물 중간저장시설에 검은 자루에 담긴 폐기물이 쌓여 있다. 일본 정부는 2045년까지 후쿠시마현 밖으로 폐기물을 최종처분하겠다고 법을 정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세우지 못했다. 후타바=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11년 넘게 피난을 떠났던 곳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루아침에 돌아올 수는 없어요.”

기자가 2일 방문한 후쿠시마현 후타바정 중심지 후타바역 인근은 주민센터와 주택을 짓는 공사로 부산했다. 일본 정부는 2017년 후타바정의 10%를 부흥 거점지구로 지정해 정비에 들어갔다. 하지만 곧 정부의 피난 지시가 해제되더라도 마을로 돌아오겠다는 주민은 많지 않다. 농업 위주였던 마을에서 농사가 어려워졌고, 생활 기반시설 정비도 아직 요원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해 실시한 피난민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고, 25%는 “판단이 안 선다”고 했다. 거점지구 외에 귀환곤란구역으로 남는 나머지 90%에 대한 제염 작업은 시작도 못했다. 마을은 역 주변을 조금만 벗어나면 사고 당시 처참했던 흔적들이 아직 남아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가옥과 상점 곳곳에는 떨어진 기왓장과 깨진 유리 파편, 무너진 간판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차로 20분쯤 이동해 원전 사고 현장 1.2km 지점에 도달했다. 당시 폭발로 철골만 앙상하게 남은 원자로 건물 옆에 파란 물탱크가 보였다. 그 안에 내년부터 태평양에 방류될 오염수가 담겨있다. 이 구역의 이날 방사선량은 시간당 1.52μSv(마이크로시버트). 한국 원자력안전위원회 기준에 따르면 방사선량이 시간당 1μSv를 초과하는 구역은 일반인이 접근할 경우 관리자의 감독을 받아야 한다. 취재를 주선한 일본 포린프레스센터 측은 방사선 노출을 우려해 “긴 옷을 입고 장갑을 껴 달라”고 했다.

‘귀환곤란구역’은 연간 방사선량 50mSv(밀리시버트) 이상인 고오염지역이어서 작업원 등 허가를 받은 사람만 정해진 시간 동안 제한적으로 출입할 수 있다. 후쿠시마현 내 귀환곤란구역 면적(337km²)은 서울 면적의 55% 규모다.

원전 인근 방사능 오염토와 폐기물을 보관하는 중간저장시설 곳곳에는 폐기물이 담긴 검은 자루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후쿠시마 원전 인근 폐기물 저장시설의 총면적은 서울 여의도 면적의 5배가 넘는다. 누노타 히로시 일본 환경성 후쿠시마재생추진실장은 “저장 후 30년 내인 2045년까지 폐기물을 후쿠시마현 밖에 최종 처분하도록 법으로 규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계획이 없다. 일본 정부는 흙을 정화해 50cm 깊이로 묻으면 99% 이상의 방사선 차단이 가능하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며 여러 실험을 하고 있지만, 모든 오염토를 이런 방식으로 처리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은 내년 오염수 해양 방출을 추진하기에 앞서 올해 안에 원자로 내 녹아내린 핵연료 제거를 시작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제거 기술을 완성하지 못했다.



후타바=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후쿠시마#피난 해제#일본#원자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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