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민주화 시위 3주년]
韓-대만-美로 떠난 디아스포라 4인 심층 인터뷰
보안법에 교사 꿈 접고 한국 온 진씨… ‘범죄인 인도 반대’ 시위 참여 만씨
‘민주주의 여신상’ 설치 주역 테디씨… 우산혁명 옥살이뒤 美유학 초우씨
《“난 (날개만 있고) 발은 없는 새예요. 평생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지 모르죠.” 반(反)중국 민주화 운동으로 확산돼 전 세계가 주목했던 홍콩의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가 9일로 3주년을 맞는다. 시위 전후 중국이 홍콩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하면서 많은 홍콩인들이 자유를 찾아, 탄압을 피해 고향을 떠나 세계로 흩어졌다. 한국과 대만,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홍콩인 4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홍콩 민주화 시위 3주년, 韓-대만-美로 떠난 홍콩인 4인 인터뷰
“정부 입맛대로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은 되고 싶지 않았어요.”
홍콩의 한 사범대를 졸업한 진소명(가명·24) 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품어온 교사의 꿈을 포기했다. 2019년을 휩쓴 홍콩의 반(反)중국 민주화 운동 이후 중국 정부는 2020년 6월 ‘반정부 언행 시 체포’를 명문화한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과시켰다.
법안 통과 후 홍콩의 한 교사는 학생들에게 표현의 자유와 홍콩의 독립에 대한 퀴즈를 냈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그런 모습을 보며 그는 꿈을 접었다. 현재 서울의 한 통번역대학원에 재학 중인 진 씨는 지난달 31일 본보 기자와 만나 “내가 기억하는 자유로운 홍콩은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 한국 온 20대 홍콩인 “교사 탄압에 꿈 접어”
2019년 6월 9일, 진 씨는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었다. 그날 홍콩에선 범죄인을 중국에 인도할 수 있도록 한 법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인구의 7분의 1인 약 103만 명이 참여했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 이후 최대 시위였다.
이후 홍콩으로 돌아와 교사 준비를 하며 학원 강사를 했던 진 씨는 수업을 마치고 학생들과 나오다 총소리를 들었다. 경찰은 파출소 앞으로 몰려든 시위대를 진압하던 중이었다. 그는 공포에 질린 학생들을 황급히 버스에 태워 대피시켰다.
진 씨는 지난해 사범대를 졸업한 뒤 교사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다시 유학을 왔다. 진 씨는 “코로나19로 고립된 상태에서 타향살이를 하다 보니 가끔 누군가 ‘이곳은 너희 집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진 씨의 ‘절친’ 5명 중 3명도 올해 안에 홍콩을 떠나 캐나다, 영국, 호주로 이주할 계획이다. 그는 “나중에 홍콩에 돌아가더라도 나를 반겨줄 친구가 없다는 게 슬프다”고 했다.
● 대만 간 40대 “홍콩인들, 날개만 있고 발 없는 새”
홍콩 민주화 시위 이후 3년간 중국의 홍콩 통제가 가속화되면서 진 씨처럼 고향을 떠나는 ‘홍콩 디아스포라(조국 밖에 흩어져 사는 민족 집단)’가 늘고 있다. 2019년 6월 이후 지난해까지 홍콩을 떠난 시민은 총 18만3700명에 달한다.
홍콩에서 작은 무역회사를 운영했던 만모 씨(40)는 2019년 시위 당시 6세 딸을 키우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시위 두 달째인 그해 8월 도저히 딸을 키울 수 없겠다는 생각에 대만으로 떠났다.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는 만 씨가 난생처음 참여했던 집회였다. 그는 “중국에 밉보이는 홍콩 시민은 누구든 중국으로 보내는 이 법만큼은 나의 딸, 우리 아이들을 위해 맞서 싸워야 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정치적인 주장을 올리지 않았지만 언제 잡혀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집회 참여 직후 계정을 삭제했다.
그해 7월 홍콩 위안랑(元朗) 역에서는 시위의 상징인 검은색 옷을 입고 귀가하던 시민들이 흰색 상의 차림 남성들에게 각목 등으로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 이후 만 씨는 딸을 유치원에 등원시킬 때마다 최루탄 등 공격에 대비해 장우산을 챙겼다. 장우산은 홍콩 시민들에게 유일하게 합법적인 보호 수단이었다.
만 씨는 대만에서도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대만은 최근 반(反)중국 정서가 커지면서 홍콩 이민자들에게 발급하던 영주권을 제한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선 ‘홍콩인들은 중국이 보낸 첩자’라며 배척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만 씨는 다른 나라로의 이주도 고려하고 있지만 전문직에 종사하던 친구들이 미국, 호주 등으로 이주한 후 배달이나 세탁소 등을 전전하는 모습을 보며 고민하고 있다. 만 씨는 “고향을 잃은 홍콩인은 ‘발 없는 새’처럼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채 계속 날아야만 한다. 나 역시 평생 그렇게 떠돌 수 있다”고 말했다.
● 미국 간 30대 “홍콩 자유 회복 불가능할 수도”
2019년 6월 시위 참여 후 약 1년 뒤 홍콩을 떠나 미국에 체류 중인 테디(가명) 씨는 지난해 12월 홍콩중문대에 설치돼 있던 ‘민주주의의 여신’ 조각상이 철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테디 씨는 2010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21주년을 맞아 학교 측의 반대에도 교정에 조각상을 설치했던 학생회 간부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조각상 철거 소식에 ‘더 이상 홍콩의 자유를 되찾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홍콩인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홍콩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법을 잘 알고 있다. 홍콩인들이 다시 힘을 합친다면 홍콩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 홍콩 못 돌아가는 30대 “멀리서나마 미래 만들 것”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간 이어졌던 ‘우산 혁명’ 당시 시위를 주도했다가 옥살이를 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앨릭스 초우 씨(32)는 해외로 흩어진 홍콩인들을 모아 민주화 투쟁을 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있다. 그는 유학 중이던 2019년 대규모 시위 때 귀국해 한 달가량 시위에 참여했다.
미국으로 온 뒤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체포를 우려해 홍콩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현재 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는 “홍콩이 중국에 장악된 이후 전문직들이 대거 나라를 떠났다. 홍콩을 되찾고 나면 많은 전문 인력이 필요할 텐데 그때 많이 기여하고 싶다. 멀리서나마 홍콩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 내 삶의 새로운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
사법 처리를 이유로 홍콩인을 중국으로 보낼 수 있는 법 추진에 반대해 2019년 6월 9일 약 103만 명이 참가해 홍콩에서 일어난 시위. 반(反)중국 성격의 민주화 운동으로 확산돼 2020년까지 이어졌다. 중국은 2020년부터 홍콩 국가보안법을 통해 민주화 인사를 탄압하고 홍콩에 대한 통제를 대폭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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