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키이우 시민들, 4일 전 러 미사일 공격 재개에 공포
“전쟁 초기로 돌아간 것 같아 무섭다”
동부 돈바스 함락 시도 집중하던 러, 38일 만에 키이우 공격
상황 급변에 놀란 시민들 “전면전 될까 두렵다”
“전쟁 초기로 돌아간 거 같아 무섭습니다. 이 전쟁…. 다시 전국으로 확대될까봐 두렵습니다. 또 얼마나 길어질까요?”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포딜(podil) 지역. 지역주민 막스 씨의 어두운 표정으로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건물을 바라봤다. 눈 앞에는 키이우의 명물 쇼핑몰 ‘레트로빌’이 대부분 부숴진 채 서 있었다. 쇼핑몰과 피트니트센터 등 각종 시설로 연간 수십만 명이 용했던 곳이다. 이곳은 3월 20일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았다. 그 여파로 여러 층에서 화재가 나 키이우 시민 6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러시아는 침공 초기 키이우를 함락하기 위해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그럼에도 키이우 시민들은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있었다. 러시아군이 4월 초 동부 돈바스 함락에 집중하면서 수도 키이우는 짧은 평화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5일 전인 이달 5일 러시아군의 전략폭격기가 이 쇼핑몰에서 불과 5, 6km에 불과한 키이우 다르니츠키, 드니프로우스키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재개했다.
폴란드 크라코프에서 출발한 기자가 도착한 키이우 버스 정류장과 불과 15km 거리에 있는 지역이다. 키이우 시민들은 “당시 수도 키이우가 공격당한 것은 4월 이후 38일 만”이라고 밝혔다.
키이에서 일하는 영어 교사 올렉산드라 씨는 “당시의 공포가 눈에 선하다”며 “사실 러시아군이 다시 키이우를 공격할지 몰랐다. 이번에 공격을 다시 받으면 시민들까지 나서 (러시아군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한국 언론 중 최초로 수도 키이우를 직접 찾아 전쟁의 상처를 상세히 취재했다.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고성능 무기를 제공하면 이제까지 공격하지 않았던 새로운 곳을 공격하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일 현지 언론을 통해 밝힌 선전포고다. 미국, 유럽 등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중거리 다연장 로켓 발사대. 대포병 레이더 등 고성능 무기를 제공하는 것에 반발해 전방위 공격을 예고한 것. 이날 러시아군 전략폭격기가 수도 키이우에 5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중 1발은 우크라이나 방공망이 파괴됐지만 나머지 4발은 키이우 일대 민간 시설, 차량 수리공장, 군사 인프라 시설 등을 폭격했다.
● 다시 커진 전쟁 공포
“다시 수도 키이우를 공격하면 전면전으로 확산될 수 있습니다.”
9일 만난 올렉산드라 씨는 전쟁의 화마가 다시 닥칠 것을 우려했다. 특히 9살 딸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했다. 키이우와 일대 수도권 지역은 2월 24일 침공과 함께 러시아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다.
수도를 단숨에 점령해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의중이었다. 수도권 일대 부차, 이르핀 등의 지역이 러시아군에 함락됐고, 그 여파로 수백 명의 시신이 고문의 흔적과 함께 발견됐다. 세계는 러시아의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비판했다.
수도 사수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의 처절한 방어에 러시아군은 4월부터 ‘2단계 작전’을 선언하며 친 러시아 세력이 많은 동부 돈바스 지역에 전력을 집중 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키이우는 러시아군 위협에서 벗어났다. 한국 대사관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서남부 지역으로 대피한 각국 대사관들도 다시 키이우에 복귀하면서 정상화가 점차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달 5일을 기점으로 상황이 급변한 것. 전쟁 발발 105일째인 9일 키이우 중심가는 여전히 긴장에 가득차 있었다. 대통령궁 일대도 경비가 삼엄했다. 수도 키이우가 본격적으로 다시 공격을 받을 경우, 이번 전쟁이 제3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1단계는 2월 24일 전쟁 시작과 함께 약 한달 간 수도 키이우를 비롯해 제2도시 북부 하르키우, 남부 주요항구도시 마리우폴, 헤르손 등 전국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이후 4월 초부터 러시아군은 ‘2단계 작전’을 선언하며 동부 돈바스 공략에 나섰고, 우크라이나군은 돈바스 사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달 5일에 이어 다시 수도 키이우이 이뤄질 경우 전면전과 함께 전쟁이 더욱 장기화될 수 있다고 외교 전문가들은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강경대응에 나선 상태다.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역시 7일 “2월 24일 전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 의미있는 승리”라며 “궁극적인 목표는 우크라이나 전 영토를 다시 찾는 것”이라고 밝혔다.
● 17시간 걸린 키이우 행
기자는 9일 자정경 폴란드 크르초바 국경검문소를 지나 우크라이나 키이우 도착까지 17시간이나 걸렸다. 국경 검문소 통과에만 2시간 이상 소요됐다. 전쟁 때문에 비행기가 다니지 않는 상황에서 수도 키이우에 가는 방법은 기차나 버스밖에 없었다.
특히 지난달부터 미군기지가 있는 폴란드 국경도시 제슈트, 프세미실부터 우크라이나 국경을 지나 서부 르비우를 거치는 철도 등이 서방 군수품을 보급한다는 이유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 이에 기자는 폴란드 크라쿠프부터 약 900㎞를 버스로 이동했다.
새벽 2시경 국경을 지나 키이우로 향하던 중 버스 운전사의 실수로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맞은편 대형 트럭과 충돌할 뻔 했다. 서로 충동을 피하는 과정에서 버스가 전복될 뻔 했고, 두 차량은 양쪽 가드레일을 받은 후에야 멈췄다. 경찰이 출동해 버스 운행이 2시간 20분 간 정체되면서 키이우는 버스 탑승 후 17시간 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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