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초기로 되돌아간 거 같아 무섭습니다. 이 전쟁이 다시 전국으로 확대되면 어떡하죠. 또 얼마나 길어질까요….”
9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포딜 지역에서 만난 막스 씨는 앙상하게 뼈대만 남은 고층 건물을 바라보며 기자에게 말했다. 그의 눈앞에 키이우의 유명 쇼핑몰인 ‘레트로빌’이 파괴된 상태로 있었다. 이 쇼핑몰은 연간 수십만 명이 찾는 키이우의 랜드마크 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3월 20일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아 시민 6명이 목숨을 잃었다.
9일 동아일보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이후 한국 언론 중 처음으로 키이우를 직접 찾아 전쟁의 상처를 들여다봤다. 한국 정부는 침공 이후 처음으로 한국 언론의 키이우 취재를 허용했다.
이날 키이우 시민들은 다시 시작된 러시아의 공습으로 인한 공포와 불안을 숨기지 못했다. 5일 러시아군은 레트로빌 쇼핑몰에서 불과 5, 6km 떨어진 키이우 다르니츠키, 드니프로우스키 지역에 미사일 공격을 재개했다. 시민들은 “키이우가 공격당한 것은 4월 이후 38일 만”이라고 했다.
○ “전면전으로 확산될까 두려워”
이날 키이우 중심가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대통령궁 일대 경비도 삼엄했다. 포격을 당한 주택가의 한 아파트는 한쪽 면이 절단된 상태였다. 인근 주유소도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아파트 철거 공사를 하던 인부 바실 씨는 “러시아군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놓고 이제 또다시 키이우를 공격하고 있다”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나도 나서서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키이우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는 올렉산드라 씨는 “(5일 공격) 당시의 공포가 눈에 선하다”며 딸(9)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또다시 키이우를 공격할지 몰랐다”며 “이번 키이우 공격을 계기로 전면전으로 확산될 수도 있다. 시민들도 나서서 (러시아군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키이우와 일대 수도권 지역은 러시아군 침공 초기 대대적인 공격을 받았다. 수도를 단숨에 점령해 전쟁을 속전속결로 끝내겠다는 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결사항전에 부딪히자 4월부터 ‘2단계 작전’을 선언했다. 친러시아 반군 세력이 일부를 장악한 동부 돈바스 지역에 전력을 집중 배치했다. 키이우는 러시아군의 직접 공격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하지만 이달 5일 푸틴 대통령이 “서방이 우크라이나에 고성능 무기를 제공하면 이제까지 공격하지 않았던 새로운 곳을 공격하겠다”고 선언한 직후 러시아군 전략폭격기가 키이우에 미사일 5발을 발사했다. 이 중 4발이 키이우 일대 민간 시설과 차량 수리 공장, 군사 시설에 떨어졌다.
○ “수도 공격 재개는 전쟁 장기화 신호탄”
키이우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이 다시 본격화할 경우 전쟁이 장기화하는 제3단계로 접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의 침공 직후 키이우 등 전국에서 전투가 벌어진 한 달이 1단계로 분류된다. 4월 초부터 러시아군은 2단계 작전이라며 동부 돈바스 공략에 나섰고, 우크라이나군은 돈바스 사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7일 “궁극적인 목표는 우크라이나 전 영토를 다시 찾는 것”이라고 했다.
기자는 9일 0시경 폴란드 코르초바 국경검문소를 출발해 키이우까지 버스로 약 900km를 이동했다. 국경검문소 통과에만 2시간 이상 소요되는 등 도착까지 17시간이 걸렸다. 전쟁으로 비행기가 다니지 않아 교통편은 기차와 버스뿐이다. 이 또한 안전하지 않다. 러시아군은 미군기지가 있는 폴란드 국경도시 제슈프와 프셰미실에서부터 우크라이나 서부 르비우로 이어지는 철도와 도로가 서방 군수품 보급로로 쓰인다는 이유로 언제든 포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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