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읽기가 어렵다구요? 국제부 기자 어깨너머에서 외신을 본 경력만 3년. 광복이가 놓치기 아쉬운 훌륭한 외신만 엄선해 전해드릴게요. 바쁜 일상 속 짬을 내 [광복이 외신클럽]을 완독해내신 당신을 위해 매 회 귀염뽀짝한 동아일보 인턴기자 광복이의 일상도 함께 공개합니다! ※‘광복이’는 생생한 글로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등장하는 국제부 임보미 기자의 반려견(부캐)입니다 |
※‘50년이 지났고 난 더 이상 네이팜탄 소녀가 아니다(It’s Been 50 Years. I Am Not ‘Napalm Girl’ Anymore.)’ ―킴푹 킴 파운데이션 창립자 NYT 기고문 발췌 |
아마 그날 찍힌, 폭발 후 다른 아이들과 달려가고 있는 제 사진을 보셨을 겁니다. AP 사진기자로 일했던 닉 우트가 찍은 사진입니다. 베트남 전쟁의 가장 유명한 이미지 중 하나가 됐죠. 닉은 그 놀라운 사진으로 제 인생을 영영 바꿔놓았습니다. 하지만 제 생명의 은인이기도 합니다. 사진을 찍은 직후 그는 카메라를 내려놓고 저를 담요에 싸 저를 응급실에 데려가줬습니다. 영원히 감사할 일입니다. 자라면서 사라져버리고 싶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제 몸 3분의 1에 남은 화상의 상처, 만성적 통증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몸에 남은 손상은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수치스러웠습니다. 상처를 옷으로 가려봤지만 불안과 우울감은 심각했습니다. 학교 친구들은 저를 놀렸고 이웃은 물론 부모님에게도 전 연민의 대상이었습니다. 점점 더 나이를 먹으며 아무도 저를 사랑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그러는 사이 그 사진은 점점 더 유명해졌습니다. 제 마음을 들여다보며 조용히 제 삶의 길을 찾기는 더 어려워졌습니다. 80년대부터 언론 인터뷰 요청은 끝없이 이어졌습니다. 전 세계 지도자들은 저 경험을 듣고 그 사진에서 의미를 찾기를 원했습니다. 거리로 뛰쳐나오던 그 아이는 전쟁 공포의 상징이 됐습니다. 저는 제가 그저 ‘피해자’로 비춰질까 두려웠습니다. 사진은 말 그대로 순간을 포착합니다. 하지만 사진 속 살아남은 사람들, 특히 어린아이들은 계속해 남은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 우리는 단순한 상징이 아닙니다. 우리도 같은 사람이고, 일자리를 찾아야하고, 연인도, 포용해 줄 지역사회도, 배우고 양육될 곳도 필요합니다. 전 성인이 되고 캐나다로 망명한 뒤에야 마음의 평화를 찾았고 사명도 깨달았습니다. 신앙, 남편, 친구들의 도움 덕입니다. 이후 전 세계 전쟁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에게 심리·의료 지원을 하는 재단의 설립에 참여해 희망을 나눴습니다. 또 최근 미국 교내 총기난사 사건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처럼 시체가 보이지는 않지만, 이런 난사도 전쟁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살육의 사진을, 특히 아이들의 사진을 퍼뜨린다는 건 너무한 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모습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합니다. 결과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으면 전쟁의 현실에서 회피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제가 텍사스 유밸디 교내총기사건 유가족을 대신해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총기난사가 지나간 여파가 어떠한 지를 보여줘야만 세상에 끔찍한 현실을 제대로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폭력에 고개를 들어 맞서야 합니다. 그 첫 단계는 직시입니다. 저는 몸에 전쟁의 결과(상처)를 지니고 다닙니다. 정신적, 물리적 상처는 시간이 지난다고 벗어나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저는 9살 소녀 시절 제 사진이 지닌 힘에, 또 그 이후 저라는 사람이 걸어온 여정에 이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제 제대로 기억도 못하는 과거의 공포는 이제 모두의 공포가 됐습니다. 이제는 제가 평화의 상징이 된 것에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그 사진 때문에 제가 겪어야 했던 어려움도 물론 많았지만, 50년이 지난 지금, 그래도 저는 닉이 그 순간을 포착해줘서 기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사진은 늘 인간이 저지른 형용할 수 없는 악행을 상기시켜줄 것입니다. 여전히 저는 평화, 사랑, 희망, 용서가 그 어떤 무기보다 늘 강하다고 믿습니다. |
※수전 손택, ‘타인의 고통’ 발췌 |
“연민은 쉽게 변하는 감정이다. 행동이 이어지지 않으면 이런 감정은 곧 사그라진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생긴 감정과 보고 듣게 된 지식으로 과연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이냐이다. ‘우리’와 ‘그들’-그런데 우리는 누구고 그들은 누구일까-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고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금방 냉소적인 태도를 갖게 되고 무감각해 진다. (중략)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은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낀다. 연민을 느낀다는 것은 곧 우리가 결백하다는 것, 동시에 우리가 무기력하다고 외치는 것이기도 하다. 선한 의도라도 이런 태도는 무례한 것일 수 있다. 우리의 특권이 저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봐야 한다. 마치 누군가의 부가 다른 누군가의 궁핍을 내포하듯 말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
※‘사진 한 장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그런 사진을 찍어봐서 안다(A single photo can change the world. I know, because I took one that did.)’ ―닉 우트 WP 기고 중 발췌 |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는 것은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관점을 갖게 해준다. 전쟁 속 죽음, 폐허 속에도 인간의 회복력은 이를 뚫고 나와 밝게 빛났다. 나는 지금 어려운 시기 서로를 돕는 우크라이나인들의 사진을 볼 때마다 이를 새삼 다시 느끼고 있다. 이런 낙관에 기대, 러시아 군인들이 무고한 우크라이나 소녀가 위험에 처한 모습을 마주한다면, 그들이 한때 내가 느꼈던 그 자극을 느껴 총을 내려놓고 인류애를 발휘하길 바란다. 나는 내 사진이 전 세계에 불러일으킨 감정과 담론들이 자랑스럽다. 진실은 계속 필요할 것이다. 만일 사진 한 장이 차이를 만들 수 있다면, 또 전쟁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면, 사진기자들이 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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