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이끄는 중도성향 범여권 연합 ‘앙상블’이 19일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극우 및 극좌 정당은 모두 약진해 여소야대 의회가 탄생했다. 2002년 총선 이후 20년 만에 집권당이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서 4월 재선에 성공한 마크롱 대통령은 불과 두 달 만에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가 추진했던 감세, 연금 개혁 등 국정 운영은 물론이고 유럽연합(EU) 차원의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에도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적극적이었던 마크롱 대통령과 달리 극우 ‘국민연합’을 이끄는 마린 르펜 대표와 극좌 ‘굴복하지않는프랑스’의 장뤼크 멜랑숑 대표는 모두 친러시아 색채가 강하며 제재에도 부정적이다.
○ 37년 최고 수준 물가에 발목
19일 내무부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이 속한 집권당 ‘르네상스’, 민주운동, 지평선 등 중도우파 정당의 연합 ‘앙상블’은 하원 577석 중 245석을 얻어 과반(289석) 달성에 실패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재선 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총선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둘 것이 예상되자 지난달 초 당명을 기존 ‘전진하는프랑스’에서 ‘르네상스’로 바꾸는 등 각종 노력을 기울였지만 유권자를 사로잡지 못했다.
그의 총선 패배를 야기한 최대 원인으로는 ‘경제’가 꼽힌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에너지와 식량 값이 치솟고 있는데도 외교에만 치중해 국민들의 팍팍한 살림살이를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985년 이후 37년 최고치인 5.8%까지 올랐다.
반면 4월 대선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경합했던 르펜 대표가 이끄는 국민연합은 89석을 얻었다. 5년 전 총선에서는 단 8석에 그쳤지만 약 10배 많은 의석을 얻었다. 당초 국민연합의 목표가 15석 내외였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공이라고 르피가로는 진단했다.
멜랑숑 대표가 녹색당, 프랑스공산당, 사회당 등을 합쳐 만든 좌파연합 ‘뉘프’는 135석을 얻어 제1야당에 올랐다. 멜랑숑 대표는 “총선 결과를 단 한마디로 말하면 마크롱의 패배”라며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이로 인해 마크롱 대통령이 재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감세, 은퇴 연령 62세에서 65세로 상향 등 각종 정책의 집행에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르펜 대표와 멜랑숑 대표는 줄곧 정년 연장에 반대해 왔다. 마크롱 정권의 다른 법안 역시 의회 통과에 상당한 난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번 선거에서 61석을 얻은 전통 우파정당 공화당의 몸값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이 극우, 극좌보다는 상대적으로 노선이 비슷한 우파와 손을 잡고 정치적 돌파구를 찾으려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에도 찬성하고 있다.
○ EU 차원의 반러 노선도 차질
프랑스의 외교 정책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16일에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찾아 우크라이나 지원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르펜 대표는 국민연합 운영 과정에서 러시아 돈을 받았다는 의혹에 휩싸일 정도로 러시아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는 대선과 총선 과정에서 줄곧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를 해제하라”고 주장했다. 멜랑숑 대표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궁지에 몰면 안 된다”며 러시아를 두둔했다. AFP통신은 의회가 교착 상태에 빠지면 마크롱 대통령이 의회 해산권을 발동해 재선거를 시도할 수 있지만 인플레이션 등으로 유권자들의 시선이 곱지 않아 선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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