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하룻새 핵심 장관 및 의원 10여 명이 줄사퇴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성비위 인사 임명을 강행하면서 거짓말한 것에 대한 후폭풍이다. 위기의 순간에도 존슨 총리 곁을 지켰던 핵심 장관들은 직을 던지면서 존슨 총리가 “신뢰를 잃었다”고 일성했다.
존슨 총리에 대한 사퇴 압박도 거세지고 있다. 이른바 ‘파티 게이트’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던 존슨 총리는 지난달 보수당 신임 투표에서 겨우 기사회생했지만, 이번 인사 후폭풍으로 또 다시 정치적 중대 기로에 서게 됐다.
5일(현지시간) BBC, 가디언 등 외신을 종합하면 이날 ‘줄사퇴’는 존슨 총리의 ‘사과 회견’ 직후 이뤄졌다. 존슨 총리는 회견에서 성비위를 저지른 크리스 핀처 보수당 하원의원을 원내부총무로 임명한 것과 이 과정에서 거짓말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존슨 총리는 임명을 강행한 것에 대해 “나쁜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잘못된 일이었고 이로 인해 큰 영향을 받은 모든 분께 사과한다. 나는 이 정부에서 약탈적이거나 권력을 남용하는 사람은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했다.
핀처 의원은 지난 2월 원내부총무로 임명됐다. 그는 지난달 29일 회원제 클럽인 칼튼클럽에서 만취해 남성 2명을 더듬은 혐의로 바로 다음날 사임했다. 이후 2019년 성추행 등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지만 의원직은 사퇴하지 않았다.
존슨 총리 이에 앞서 그를 2019년 7월 유럽·미주 담당 장관, 2020년 내각 개편에서 주택부 장관으로 임명한 바 있다.
존슨 총리는 핀처 의원을 요직에 앉히면서 과거 성비위 사실을 알고도 이를 묵인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최근 며칠 동안 “과거 성비위 사실을 몰랐다”거나 “이미 해결됐거나 정식으로 문제 제기된 것이 아니다”, “(보고를) 기억하지 못했다”는 등 말을 바꾸며 해명하는 태도를 보였다.
존슨 총리 사과 후 고위직 장관 2명과 보수당 부의장, 장관 보좌 의원 4명, 무역대사 2명 등 10여 명이 이날 저녁 모두 사임 의사를 밝혔다.
사지드 자비드 보건장관이 가장 먼저 사표를 던진 뒤 리시 수낙 재무장관이 곧바로 뒤를 이었다. 이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옆을 지켰던 핵심 장관들인데, “존슨 총리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낙 장관은 “이것이 나의 마지막 장관직일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지만 이러한 기준들(신뢰)은 싸워서라도 지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것인 내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이유”라고 밝혔다.
자비드 장관은 “신뢰를 잃어버린 존슨 총리 아래서 더 이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서 장관직을 수행할 수 없다”고 했다.
존슨 총리는 이들의 사직서를 수리하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하는 서한을 보냈다. 사임에 대해 유감이라면서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기간 역할을 한 것을 높이 사면서 “많이 그리울 것”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이어 빔 아폴라미 보수당 토리당 부의장이 TV 생방송 중 사임을 발표했다. 그는 두 장관의 사임으로 존슨 총리가 당과 국가의 지지를 잃었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나는 그(존슨 총리)가 물러날 때가 됐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장관을 보좌하는 하원의원 4명과 케냐 등 무역대표 2명도 사직서를 냈다. 알렉스 초크 잉글랜드·웨일즈 법무차관도 직을 내려놨다.
반면 리즈 트러스 외무장관과 벤 월리스 국방장관은 존슨 총리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도미닉 라브 부총리 겸 법무장관과 프리티 파텔 내무장관도 사임 의사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존슨 총리는 줄사퇴에 유감을 표하며 후속 인사를 단행했다.
나딤 자하위 교육부 장관을 재무부 장관으로, 스티브 바클레이 비서실장을 보건부 장관으로, 미셸 도닐런 교육부 차관을 장관으로 승진 임명했다.
키어 스타머 제1야당 노동당 대표는 “지금 정부가 붕괴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 장관들이 존슨 총리와 공모했다고 주장하며 “그들은 존슨 총리가 거짓말 할 때 그를 지지했다. 영국 국민의 희생을 조롱했을 때 지지했다”고 비난했다.
이날 긴급 실시된 유거브 여론조사에선 영국인의 69%가 존슨 총리가 사임해야 한다고 답했다.
존슨 총리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중 총리실에서 파티를 연 이른바 ‘파티 게이트’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달 보수당 불신임 투표에서 가까스로 기사회생했다. 불신임 투표가 부결된 경우 1년 내 다시 재투표하지 못하도록 돼 있어 1년 임기를 보장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후 보궐선거에서 두 곳 모두 패배했고, 이번 내각 붕괴 사태를 거치면서 규정을 바꿔야 한다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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