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39)가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대부분의 수학자는 어릴 때부터 국제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수학에 재능을 보이는데 허 교수는 그렇지 않았다고 NYT가 보도했다.
1983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난 허 교수는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한국에서 교육받았다. 그는 “수학에서는 눈에 띄게 평범했다”며 “몇몇 시험에서는 무난한 점수를 냈지만, 대부분 낙제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10대 시절 허 교수는 시인이 되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도 그 꿈을 좇았지만,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진학하게 되자 과학 전문 기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시인을 꿈꿨던 시절부터 번뜩이는 수학적 통찰력을 본인도 인식했다고 NYT는 전했다.
1990년대 중학생 시절 허 교수는 ‘11번째 시간(The 11th Hour)’이라는 컴퓨터 게임에 포함된 체스 퍼즐을 즐겼다. 검정 나이트 2개와 흰색 나이트 2개의 위치를 바꾸는 것이 목표였는데, 그는 이 퍼즐을 푸느라 일주일 넘게 머리를 싸매고 고민했다.
허 교수는 끝내 각각의 나이트가 이동할 수 있는 칸을 찾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각각의 나이트가 어느 칸으로 이동할 수 있는지를 그래프로 재구성해 답을 찾아냈다. 허 교수는 수학 문제를 단순화하고 해답을 명확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만들어 수학 문제를 재구성하는 것이 해답의 열쇠라고 설명했다.
이후 수학을 다시 보게 된 건 대학에서의 마지막 해였던 23살이었다. 과학 전문 기자를 꿈꾸던 그를 수학자의 길로 이끈 사람을 만난 것도 같은 해였다. 당시 1970년 필즈상을 수상한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서울대 초빙교수로, 대수기하학 강의를 하고 있었다.
허 교수도 그의 수업을 들었다. 그는 “히로나카 교수는 동아시아의 슈퍼스타”라고 부연했다. 히로나카 교수의 첫 수업에는 100명 이상의 학생이 모였지만, 수업이 진행될수록 학생들은 수업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학부생이 이해하기에는 다소 복잡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허 교수는 “세 번째 수업에는 학생이 다섯 명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히로나카 교수와 수학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종종 점심을 함께했다. 그는 “대부분 히로나카 교수가 내게 말을 걸었다”며 “나는 무언가를 이해하는 척 리액션해야 했다. 사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회고했다.
서울대를 졸업한 뒤 허 교수는 히로나카 교수의 권유로 서울대 수학과 석사 과정을 밟았다. 이후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미국의 12개 대학원에 지원했다.
허 교수는 학부시절 수학 성적은 엉망이었지만, 필즈상 수상자인 히로나카 교수의 추천 메일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대학원에서 합격 통보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일리노이대 어배너-샴페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퇴짜를 맞았다. 심지어 일리노이대도 그를 ‘대기자’ 명단에 올렸다.
우여곡절 끝에 일리노이대에서 공부를 시작한 그는 수학계의 오랜 난제였던 ‘로타 추측’의 부분 문제 ‘로타 추측’을 해결하며 수학계 스타로 떠올랐다.
꼭짓점과 변으로 이뤄진 그래프를 채색하는 가짓수를 표현하는 식을 ‘채색다항식’이라 부른다. 이 채색다항식의 계수가 가진 성질에 대한 난제 중 하나가 ‘리드 추측’이다. 리드 추측은 1968년 제시된 이래 긴 시간 증명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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