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세계 경제가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신호가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경기침체 우려로 국제유가가 급락해 배럴달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곡물·원자재·금 값도 하락했다. 불황의 신호로 여겨지는 미국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도 벌어졌다. 유럽도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 속에 달러 대비 유로화 환율이 20여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뉴욕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수요가 둔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현실화된 것이다.
● 유가·원자재 값 하락 “수요 둔화”
5일(현지 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물 서부텍사스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8.2%(8.93달러) 하락한 99.5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 가격이 종가 기준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진 것은 4월 이후 두 달여 만이다. 유가 하락으로 에너지 기업 21개로 구성된 미 뉴욕 증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에너지 섹터 지수도 이날 약 4%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에너지 섹터 지수가 1970년 이래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전했다. 6일 WTI는 100달러 안팎을 오갔다.
유가는 향후 경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로 통한다. 경기 상승기에는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것이란 전망 때문에 유가가 오른다. 반대로 경기침체기에는 경제활동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유가가 내려간다. 그동안 유가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 부족, 팬데믹 이후 경제 활동량 증가 기대에 따른 수요 확대로 상승해왔다. 지난달 6월 WTI 7월물 선물 가격이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유 공급부족이나 유럽 에너지 위기 등 거시적 요인이 변하지 않았는데도 유가가 급락한 것은 지난달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번에 0.75%포인트 인상)’ 이후 투자자들의 경기침체 우려가 커졌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 연준은 이날 발표한 유가시장 보고서에서 “공급 전망이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요 감소로 유가가 하락했다”고 분석했다.
경기가 식었다는 수요 둔화의 징조는 곡물 등 원자재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의 옥수수 9월 인도물은 3.4%, 대두 8월 물은 9.75% 하락했다. 금리 인상 등으로 달러화 가치가 급상승해 달러 기반으로 거래하는 원자재 시장에 부담을 주고 있는데다 경기 침체 우려가 겹친 결과다. 금, 구리, 은 등 금속도 줄줄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특히 5일 뉴욕상품거래소에서 8월물 금 선물 가격은 전장 대비 2.1% 하락한 1온스당 1,763.90달러에 거래를 마쳐 1800달러 선 아래로 내려갔다.
● 달러 가치 초강세, 20년 만에 최고치
미 채권시장에선 경기침체를 시사하는 장·단기 국채 금리 역전 현상이 또다시 벌어졌다. 5일 2년 만기 금리는 2.8286%, 10년 만기 금리는 2.8054%에 거래됐다. 올 들어 3월과 6월에 이어 세 번째다. 장기 금리가 단기보다 더 낮은 것은 경기침체 우려에 따라 장기적으로 금리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반영됐다는 의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50년 동안 미국의 모든 경기침체기에 앞서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고 보도했다. 실제 2006년 미 국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나타난 지 2년 만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글로벌 경제 위기감 속에 달러는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경기 우려가 클수록 안전자산인 달러 수요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5일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는 장중 106.78까지 오르면서 연중 최고가를 경신하다 106.5로 장을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2002년 11월(106.60) 이후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반면 유럽 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자 달러 대비 유로화 환율은 1.028달러까지 내려갔다. ‘1달러=1유로’에 근접한 것으로 20여년 만에 최저치다.
일본 투자은행 노무라는 한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EU)이 1년 안에 경기침체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미국 경제가 40년 만에 더블딥(이중 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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