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시민들, 대낮 前총리 피격에 충격
“지금껏 70년을 살면서 총이라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다른 나라 이야기인줄만 알았는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피격 사건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10일, 도쿄 시나가와구 제5투표소 앞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전전(戰前·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여러 번 (정치인) 테러가 있었다고 들었지만 크면서 단 한 번도 총을 본 적이 없다”며 몸을 떨었다. 50대 회사원도 “일본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도 아닌데 전직 총리가 총에 맞았다니 충격적”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 “총격, 혼란스럽고 받아들이기 어려워”
8일 아베 전 총리가 사제(私製) 총에 맞아 숨지면서 ‘총의 공포’가 일본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총기 규제가 엄격한 일본에서는 조직폭력집단인 야쿠자 간의 불법 총기를 사용한 총격전을 제외하고는 총격 사건 자체가 매우 드물다. 9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2017년 이후 5년간 일본에서 총기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14명에 불과했다. 지난해에는 단 한 명뿐이었다. 하지만 평일 대낮에 전직 총리의 공개 유세 현장에서 피격 사건이 벌어지면서 시민들 충격은 더욱 큰 상황이다.
일본 시민들은 “믿을 수 없다”며 ‘낯선’ 공포감을 드러냈다. 아베 전 총리가 비명에 간 나라현 유세 현장에 있었다는 한 미용사는 10일 마이니치신문에 “‘펑’ ‘펑’ 하는 총소리가 비현실적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자민당 소속 선거운동원도 “불꽃놀이 같은 소리라서 장난이라고 생각했다”며 “아직도 몸이 부르르 떨린다”고 했다. 도쿄의 25세 디자이너 에리카 이노우에 씨는 NYT에 “일본에 총이 있나요”라고 반문하며 “총격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혼란스럽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얘기했다.
○ “日 더 이상 안전한 평화의 나라 아냐”
일본에서 민간인 권총 소지는 불법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일본에선 총기를 구매하려면 13단계의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사실상 ‘무관용’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특히 2007년 이토 잇초 전 나가사키 시장이 피격당한 뒤 규제와 처벌 강도가 더 세졌다. 총기 보유율도 매우 낮은 편이다.
미국 CNN이 보도한 스위스 제네바 국제개발대학원 연구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일본 국민 100명당 0.25정의 총기를 소유하고 있다. 100명당 약 120정인 미국에 비하면 매우 적다. NYT는 “이전까지 일본인은 총기 사건을 겪은 적이 거의 없었다”며 “정치인 유세 현장에서 경찰 경호도 약한 편이어서 유권자는 선거 기간 국가 최고지도자들과 가까이서 교류할 수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으로 일본 사회 치안의식과 정치 환경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 일본 경찰청은 각 정당에 경호를 강화해 달라고 주문했다. 9일 야마나시현에서 열린 기시다 후미오 총리 연설회장에는 금속탐지기가 설치됐고 경찰은 삼엄한 경비를 펼쳤다.
일본 전문가인 제럴드 커티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NYT에 “일본은 더 이상 제2차 세계대전 직후처럼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가 아니다”라며 “새로 직면한 무서운 현실에 대처하기 위해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문제는 일본 정치 지도자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라고 지적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도쿄=이상훈 특파원 sangh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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