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복합위기’ 현장을 가다] 국가부도 스리랑카 르포
前대통령 일가, 일대일로 참여 주도… 가문 근거지에 항만 등 시설 건설
“대규모 인프라 필요 없는 곳인데, 中서 거액 채무… 국가부도 이어져”
中, 콜롬보 항만 운영권 99년 보유… 국민들 “中과의 계약 너무 불공평”
“당신 중국에서 왔느냐?”
15일(현지 시간) 스리랑카 최대 도시 콜롬보의 대통령궁에서 한 시민이 대뜸 기자에게 물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굳은 표정을 풀며 “한국이면 괜찮다. 중국은 우리 것을 도둑질했다”고 비난했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5월 국가부도 선언, 이달 13일 고타바야 라자팍사 전 대통령의 해외 도피에 이어 16일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라닐 위크레메싱헤 총리가 국가 비상사태까지 선포한 스리랑카 곳곳에서 반중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프라 투자를 통한 중국의 경제영토 확장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사업에 무리하게 참여했다 실익도 얻지 못한 채 중국에 대한 부채가 급증한 것이 부도로 이어진 주요 원인이라고 보는 스리랑카인이 많기 때문이다.
○ 대통령궁 옆 일대일로 부지는 황무지
대통령궁에서 도로를 하나 건너면 바로 나오는 269만 m²(약 81만 평)의 부지에 위치한 ‘콜롬보 포트시티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일대일로 사업으로 꼽힌다. 고타바야 전 대통령의 친형 마힌다 전 대통령은 2014년 집권 당시 이곳에 신도시를 지어 ‘남아시아의 두바이’로 만들겠다며 중국 자본을 끌어들였다.
17일 찾은 이곳은 사업 8년이 흘렀지만 부지 대부분이 황무지였다. 부지 정문에 도착한 기자에게 보안요원은 “관계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며 출입을 막았다. 부지 안쪽에 경찰 수십 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중국인으로 보이는 관계자도 있었다.
이 사업의 개발 주체는 중국항만엔지니어링(CHEC). 일대일로를 주도하는 중국의 대형 인프라기업 중국교통건설(CCCC)의 자회사다. 이 회사가 개발한 함반토타항, 마탈라 라자팍사 국제공항, 남부고속도로 등은 라자팍사 가문의 근거지인 함반토타에 건설됐다. 대부분 마힌다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시작됐다. 하지만 면적이 미국의 주(州)에 해당하는 함반토타지구의 인구는 2200만 스리랑카 인구의 2.7%(60만 명)에 불과해 이 정도의 대규모 인프라가 필요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대일로 참여를 주도한 라자팍사 일가가 중국과 불공정 계약을 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가문의 근거지인 남부 함반토타 일대에 항만, 철도, 공항 등을 짓기 위해 고금리로 중국 돈을 빌리는 바람에 중국에 갚아야 할 돈이 산더미처럼 늘었다는 것이다. 독일 공영방송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국가 부채는 510억 달러(약 67조 원)다. 이 중 10%가 중국에 진 빚이다. 미국의소리(VOA) 등은 이 수치가 20%를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시민들 “中과 맺은 계약 너무 불공평해”
“우리 정부가 중국과 맺은 계약이 너무나 불공평합니다.”
기자와 만난 콜롬보 시민 에드워드 씨(45)는 이렇게 말했다. 대규모 인프라 계약이 중국에 유리한 쪽으로 설계됐다는 것이다. 중국은 콜롬보 포트시티가 완성되면 신도시 내 43%의 부지에 대한 운영권을 99년 동안 갖기로 했다. 함반토타항 건설 때 중국에 진 빚을 갚지 못해 이 항구의 운영권은 이미 2017년부터 99년간 중국으로 넘어간 상태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마힌다 전 대통령이 2015년 3선에 도전했을 때 중국이 그에게 760만 달러(약 100억 원)를 지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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