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두창이 세계보건기구의 감염병 최고경보 단계인 국제적공중보건비상사태(PHEIC)로 선언된 가운데, 유럽 등지서 유행 중인 지금의 질환은 기존 아프리카 엔데믹(풍토병) 지역의 증상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연구가 재차 발표되고 있다.
발열과 두통, 근육통, 오한, 피로 대신 입과 항문, 생식기 주변에 작은 종기가 돋는 발진 증상이 새로 추가됐고, 이에 그간 유행이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한 전파’가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뉴잉글랜드저널오브메디신이 지난 21일 발표한 연구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영국 런던 퀸메리대 연구진이 16개국 528명 감염사례를 조사한 것으로, 지금까지 발표된 유사 연구들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이다.
연구 주요 저자인 클로이 오킨 런던 퀸메리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임상의학 교수는 “감염사례 인지는 필수적인데, 현재 우리는 이 병을 인지할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퀸메리대 성보건·HIV 분야 의사 존 손힐은 “이러한 다른 증상들은 매독이나 헤르페스 등 흔한 성병과 쉽게 헷갈릴 수 있어 놓치기 쉽다”며 “증상 정의를 확대할 것을 제안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전 세계 원숭이두창 확진자는 1만5000여 명으로 파악되며, 그중 약 2300명이 미국에서 감염됐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지난달 말 입과 생식기, 항문 주변 발진이라는 새 증상을 원숭이두창 관련 지침에 포함했다.
미 일부 지역 보건당국도 새 증상 패턴을 담은 경고안을 마련했는데, 뉴욕시 보건당국이 지난 18일 발표한 경고안에는 발열과 림프절 부종, 항문과 생식기 발진 등 ‘비정형적 특징’이 담겼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증상 외에도, 원숭이두창이 정액을 통해 전염되는지는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연구 결과에서도 다시 한 번 타나났다. 이번 연구에서 32개 정액 샘플 중 29개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됐지만, 전염성을 보이진 않았다고 연구진은 전했다. 혈액 샘플의 경우 대부분 바이러스 양성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원숭이두창은 친밀한 접촉을 통해 전파되지만, 성적으로 감염되는 질병으로 명확히 규정되지는 않고 있다. 최근 서구 국가에서 주로 남성과 성관계 한 남성들 사이에서 번지고 있지만, 원래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 엔데믹 지역에서는 주로 감염된 동물과의 접촉 또는 가정 내 접촉을 통해 확산돼왔다.
미국은 이제 원숭이두창 확산을 막기 위해 대응하려 하지만, 백신 공급과 공중보건 메시지 전파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미국 보건인적자원부에 따르면 현재 유일한 백신인 바바리안 노르딕의 진네오스는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 상태다. 항바이러스제로 쓰일 수 있는 시가테크놀로지의 티폭스(Tpoxx) 역시 임상의 처방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비영리단체 ‘유대계 퀴어유스’의 모르데하이 레보비츠는 “원숭이두창은 HIV치료제 접근이 어렵고 환자들이 약을 애타게 기다리던 1980년대 기억을 끄집어냈다”고 말했다. 에이즈 해방 연합 등의 단체들도 의회를 향해 더 많은 조치를 취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리처드 버 공화당 상원의원과 워싱턴주 패티 머레이 민주당 상원의원은 정부의 원숭이두창 관련 대응을 비판하고, 백악관내 전담팀을 꾸릴 것을 요구하는 초당적 팬데믹 예방법을 홍보하고 있다.
앞서 블룸버그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보건위기 대처에 보다 권한을 가진 사무소를 보건부내 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원숭이두창 감염사태를 국제적공중보건비상사태로 선언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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