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공급난이라는 우려 속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산 석유 제재 방침을 완화하고 있다.
31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정부는 유가 상승과 글로벌 에너지 공급 위기 속 러시아를 시장에서 퇴출 시키겠다는 계획을 부분적으로 개정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유럽연합(EU)은 영국과 손잡고 지난 6월 러시아산 석유를 실은 선박에 대한 해상 보험을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 당시 서방은 러시아 석유를 해상으로 운송할 때 가입해야하는 보험을 제재함으로써 사실상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금지하겠다는 복안이었다.
특히 영국과 EU가 세계 해상 보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제재는 효과적으로 러시아를 옥죄일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지난 7월 영국 의회에서 승인된 대(對)러 제재를 살펴보면 영국행 러시아산 석유 운송 선박에 대한 보험은 12월31일 이후부터 금지된다. 더욱이 영국을 제외한 제3국으로 러시아산 석유를 운송하는 것은 금지되지도 않았다고 매체는 덧붙였다.
현재 러시아는 인도, 중국, 아프리카 국가에 석유 수출을 늘리며 신규 고객 확보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다.
로이즈 마켓의 언더라이팅(보험계약심사) 이사인 패트릭 데이비슨은 “재보험 산업의 글로벌 특성을 감안할 때 EU 제재는 영국의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수요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현재 영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출 금지 조치는 없다”면서 “제재가 시행될 경우 영국 정부와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재무부는 최선의 조치를 모색 중이라는 원론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재무부 측은 “우리는 러시아에 추가 제재를 부과할 준비가 돼 있다. 러시아 경제에 최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동맹국들과 빠른 속도로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EU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당초 EU는 지난 6월 러시아 석유를 운반하는 모든 선박에 대해 새로운 보험 계약 체결을 금지하면서 기존 계약은 12월 5일까지 유효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EU 역시 역내를 제외한 지역으로 향하는 러시아산 원유 수송선에 대한 보험을 제공키로 했으며, 러시아 국영 에너지기업 로즈네프트 등 일부 기업들에 결제 대금도 지불할 수 있도록 제재안 일부를 개정했다고 FT는 전했다.
EU 집행위원회 측은 이러한 조치들이 “전 세계 식량과 에너지 안보에 악영향을 초래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취해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영국과 EU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대한 징벌적 조치의 일환으로 석유 운송 선박에 대한 보험 금지라는 강력한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에너지 위기 속 이들이 슬그머니 제재를 완화하자 시장에는 불확실성이 확대됐다.
국제로펌 HFW의 사라 헌트 변호사는 로스네프트 석유를 사들여 EU 이외의 국가로 운송하는 것이 합법인지 자문을 구하고 있다며 “EU가 법안을 개정해 유럽 기업들의 러시아 석유 수입을 사실상 허용하겠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국제로펌 리드 스미스의 파트너 변호사인 리 핸슨 역시 “EU의 제재 개정안은 ‘큰 후퇴(big retreat)’라면서 변호사들은 영국으로부터 ”더 강력한“ 조치를 기대해왔다”고 말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이 6개월차로 접어든 가운데 그간 러시아를 각종 제재로 옥죄이던 EU와 영국의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유로존의 7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8.9%로 또 한 번 사상 최고치를 기록, 유럽중앙은행(ECB)의 목표치(2%)를 크게 웃돌았다. 영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대비 9.4%를 기록, 40년래 최고치를 달성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 가스프롬이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을 통한 유럽행 천연가스 공급량을 일일 20% 수준으로 낮추면서 유럽 국가들의 제재에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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