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신성모독 논란을 일으킨 소설 ‘악마의 시’를 집필한 인도계 미국인 작가 살만 루슈디(75)가 12일 뉴욕주 강연에서 레바논계 미국인 하디 마타르(24)로부터 피습당해 중상을 입었다. 당국은 이란 최고 실세 조직인 혁명수비대 등에 동조해 온 마타르를 2급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정확한 범행 동기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다.
루슈디는 1988년 ‘악마의 시’를 출간한 후 내내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1989년 당시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파트와’(종교 칙령)를 통해 루슈디에게 사형선고를 내리자 곳곳의 극단주의자들이 이를 따르겠다며 그를 노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3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며 테러를 규탄했다. 이번 사태가 핵합의 복원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미국과 이란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제기된다.
○ 이란 동조 레바논계 미국인 범행
루슈디는 12일 뉴욕주 서부 셔토콰에서 박해 위협으로 추방된 작가에게 안식처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 ‘셔토콰연구소’의 공동 창립자 헨리 리스와 질의응답을 진행했다. 이때 검은색 윗옷을 입은 마타르가 무대를 뛰어넘어 달려들어 흉기로 루슈디의 목, 복부, 오른쪽 눈, 가슴 등을 10여 차례 찔렀다. 리스도 부상을 입었다.
루슈디는 한때 중태에 빠졌지만 많이 호전된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동료 작가는 트위터에 “그가 인공호흡기를 뗐고 대화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습 당일 루슈디의 대변인은 오른쪽 눈의 실명 가능성을 제기하며 간 등이 크게 손상됐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체포된 마타르는 13일 기소 인정 여부 심의에서 무죄를 주장했다. 마스크를 쓰고 수갑을 찬 채 법정에 등장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당국은 소셜미디어에서 그가 이란 혁명수비대, 시아파 극우단체 등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 점을 파악했다.
다만 아직 정확한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마타르와 가족이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와 연관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자주 다녔다는 복싱장 관계자는 CNN에 “남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매일 ‘최악의 날’ 같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고 했다.
○ 33년 전 호메이니 지시 후 신변 위협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악마의 시’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고뇌하는 신앙인으로 묘사했고 소설 속 매춘부 이름이 무함마드의 부인과 같다는 점 등을 신성모독으로 본다. 이슬람 혁명으로 집권한 이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는 1989년 파트와로 “루슈디와 책의 출판에 관여한 사람은 누구든 살해하라”고 지시했다. 호메이니 사후 이란 정부는 “파트와 지지를 철회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2017년에도 “파트와는 유효하다”며 이를 취소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33년간 루슈디와 번역가에 대한 신변 위협이 이어졌다. 루슈디는 오랫동안 가명을 쓰고 은둔 생활을 하다 2016년 미국으로 이주했다. 1991년 일본 번역가 이가라시 히토시가 도쿄에서 괴한에게 살해됐지만 범인을 잡지 못한 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이탈리아, 터키, 노르웨이 번역가 또한 공격을 받거나 신변에 위협을 당했다.
이란은 입장을 내놓지 않았고 헤즈볼라는 관련 가능성을 부인했다. 다만 모하마드 마란디 이란 핵협상팀 고문은 핵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이란이 핵협상 복원을 반대한 대이란 강경파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을 암살하려 했다고 최근 발표한 점, 루슈디 피습 등이 잇따라 발생한 것이 이상하다고 주장했다. 반이란 세력이 이란 비판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습격을 배후 조종했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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