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의 우려에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자동차에만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서명했다. 법안이 이날부터 즉각 발효되면서 지원금이 끊긴 현대차·기아의 미국 내 전기차 확대 전략이 차질을 빚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북미에서 제조되거나 조립된 전기차에만 세액 공제 혜택을 준다’는 조항이 포함됐다. 미국에 전기차 생산라인이 없는 현대 아이오닉5나 기아 EV6는 세액 공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아이오닉5나 EV6를 사려는 미 소비자는 차량 1대당 최대 7500달러(약 987만 원)인 세액 공제 형태의 보조금을 받지 못한다.
한국의 또 다른 수출축인 반도체 시장은 10년 만의 침체가 현실화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대만 TSMC 등이 반도체 투자를 축소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세계의 경기지표 역할을 해온 한국의 수출 규모도 하락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美 “볼보-닛산 전기차에 보조금”… 경쟁사 현대차-기아는 빠졌다
美 인플레감축법에 韓 전기차 비상… 북미産 20여종, 최대 7500달러 현대차-기아 美공장 2025년 완공… 3년간 가격 경쟁력에서 밀려 블룸버그 “반도체 공급이 수요 추월… 한국, 수출 시장서 타격 받을수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 시간)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은 기후변화를 막겠다는 것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미래 에너지 패권을 미국이 쥐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미산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해 전기차 공급망을 장악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중심의 전기차 공급망을 구축하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반도체에 이어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등에서 미국의 입김이 커지는 가운데 경기 침체 신호가 잇따르면서 한국 수출의 주축인 자동차, 반도체 산업은 비상이 걸렸다.
뉴욕타임스는 “3690억 달러 투자 방안이 담긴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전기차 산업과 에너지 시장의 전환기를 가져올 것”이라며 “자동차나 에너지가 어디서 생산되는지가 중요해졌다”고 보도했다.
○ 한국차 경쟁 상대 볼보·BMW·닛산 지원 대상
바이든 대통령이 이날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에 따라 미 재무부와 에너지부가 공개한 올해 세액공제 지원 대상 북미산 전기차 21종에 현대차·기아의 경쟁 상대인 볼보 S60, BMW 3시리즈, 닛산 리프 등이 포함됐다. 반면 이날부터 북미 지역 밖에서 생산된 전기차는 사실상 소비자 보조금인 최대 7500달러(약 987만 원)의 세액공제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에 따라 현대차·기아는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이 완공되는 2025년까지 3년 동안 보조금에서 완전히 배제돼 가격경쟁력에서 밀리게 됐다. 현대차 아이오닉5나 기아 EV6를 사려는 소비자는 다른 차에 비해 1000만 원가량 비싸게 주고 사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이날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내부적으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보다 제조 원가가 비싸기 때문에 정부 지원금은 전기차 시장 확대에 필수 요건이다. 미국 정부는 그간 제조사가 누적 판매량 20만 대를 달성하기 전까지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세액공제 형태로 보조금을 지급해 왔다.
테슬라, 제너럴모터스(GM), 도요타는 이미 20만 대를 넘어선 상태다. 전기차 시장의 후발 주자인 현대차·기아는 보조금을 통해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할 계획이었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으로 이런 전략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내년에는 세단의 경우 5만 달러 이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8만 달러 이하 북미산 전기차에 한해 누적 판매량과 관계없이 지원을 받는다. 이에 따라 현대차 아이오닉5의 경쟁 차종인 테슬라 모델3 기본 모델(4만6990달러)이나 GM 볼트(3만 달러대) 등 인기 차종이 지원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미 언론이 GM과 테슬라를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수혜 기업으로 꼽는 이유다.
○ LG·SK·삼성 배터리 3사, 호재이자 부담
이 법에는 2024년부터 중국산 배터리를 완전히 배제해야 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미국 자동차 기업 GM, 포드, 스텔란티스와 미국 내 합작사를 건설 중인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에 호재다. 다만 2025년부터 배터리에 들어가는 중국산 핵심 광물도 배제해야 한다. 배터리 3사가 중국산 광물 의존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부담을 키우는 부분이다.
중국 관영 영자지인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미국이 청나라를 연상시키는 고립주의적 사고방식에 빠져 있다”며 “역설적으로 치솟는 물가를 더 부채질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자동차와 더불어 한국 수출의 주축인 반도체 시장은 수요 악화에 비상이 걸렸다. 블룸버그는 “한국 수출은 반도체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며 증가했지만 내년 반도체 공급이 수요보다 거의 2배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으로 보여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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