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며 11월 8일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가 73일 앞으로 다가왔다. 2년 임기의 하원 435석 전체, 6년 임기의 상원 100석 중 35석을 교체하는 이번 선거의 판세 또한 시시각각 급변하고 있다.
당초에는 야당 공화당이 이번 선거에서 유리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40여 년 내 최고치로 치솟은 미 소비자물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비판하는 공화당 지지층의 결집, 지난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군 혼란 이후 계속된 대외정책 난맥상 등이 집권 민주당에 불리하게 작용해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당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역대 중간선거에서 집권당이 재미를 보지 못했다는 점도 이런 분석에 설득력을 더했다. 1930년대 민주당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정권이 출범한 후 현재까지 여당이 첫 중간선거에서 기존의 하원 의석을 지켜낸 사례는 15회 중 1회에 불과하다. 이 1회는 바로 전대미문의 9·11테러 다음 해 치러졌던 2002년 중간선거여서 예외적인 경우였다. 즉, ‘중간선거=집권당의 하원 패배’로 봐도 무리가 없다는 것이다. 미 외교협회(CFR)에 따르면 여당은 첫 중간선거에서 평균 하원 29석을 잃었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달 들어 각각 미 전기차업계, 반도체업계를 부양하기 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지원법에 잇따라 서명하며 경제 살리기에 나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내내 치솟던 국제 유가 상승세 또한 잦아들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 보수 우위로 변한 연방대법원이 6월 여성의 낙태권을 뒤집는 판결을 내린 후 이에 반발한 여성 유권자가 민주당 쪽으로 돌아서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에 따라 하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고, 상원 다수당의 향방은 아직 알 수 없다는 평이 우세하다. 공화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인 2020년 이후 2년 만에 여소야대 의회가 출범한다.
○ 공화, ‘상·하원 모두 승리→하원 승리’로 기대 낮춰
현재 하원 435석 중 민주당과 공화당은 각각 221석, 214석을 보유하고 있다. 상원은 두 당이 100석 중 절반씩 나눠 가지고 있다. 상원의장을 겸하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동수 법안에 대해 표를 행사할 수 있어 상하원 모두 민주당이 다수당이다.
25일 ABC뉴스에 따르면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하원에서 현재보다 16석 많은 230석을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민주당의 의석은 205석으로 줄어든다. 상원 다수당의 향배는 오리무중이다. 이번에 뽑는 상원 35석 중 현재 공화당 의석은 21석, 민주당은 14석이다. 즉, 공화당은 21석을 모두 지켜야 현상 유지가 가능하므로 민주당에 비해 불리한 처지에 있다.
현재 ABC뉴스는 35석 중 공화당과 민주당이 각각 18석, 11석을 차지하고 6석이 경합 상태라고 내다봤다. 정치매체 폴리티코 역시 공화당 19석, 민주당 11석, 경합 5석으로 예상했다. 민주당이 경합주 5, 6석 중 대부분을 차지하면 현재의 50 대 50 구도가 유지되거나 민주당이 확실한 상원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공화당 지도부 또한 하원과 달리 상원 장악은 쉽지 않다고 인정하고 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19일 “하원에서는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상원에서는 양당 중 누가 이기더라도 매우 근소하게 이길 것 같다”고 했다.
○ ‘낙태권 수호’ vs ‘고물가 심판’
이번 선거의 핵심 쟁점으로 민주당은 낙태권 폐지, 공화당은 고물가를 꼽고 있다. 민주당은 1973년부터 49년간 유지됐던 여성의 낙태권이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급격한 보수화로 폐기됐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3명의 보수 성향 판사를 종신직인 대법관으로 임명하는 바람에 현재 대법관 9명 중 6명이 보수 성향이 됐고 이런 대법원의 구도가 낙태권 폐기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민주당이 낙태권 폐지로 여성들이 겪을 각종 고통을 강조하는 광고를 연일 내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낙태권 논란이 민주당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21일 NBC뉴스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자의 66%가 “중간선거 때 꼭 투표하겠다”고 답해 3월 조사 때보다 16%포인트 늘었다. 같은 기간 공화당 지지자의 투표 의향은 67%에서 68%로 불과 1%포인트만 증가했다.
24일 정치매체 더힐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에 따라 주법으로도 낙태를 금지할 가능성이 높아진 위스콘신, 캔자스, 미시간주 등에서는 최근 여성 유권자의 신규 등록이 급증했다. 이들 대부분은 민주당 지지 성향으로 추정된다. 특히 공화당 텃밭으로 꼽히는 중부 캔자스에서는 6월 24일부터 이달 16일까지 약 두 달간 등록한 신규 유권자의 70%가 여성이었다.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 수뇌부는 “중간선거에서 낙태권에 찬성하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이 수적 우위를 차지해야 낙태권 보장 법안을 통과시키고 사실상 대법원 판결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것이다.
공화당은 고물가와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거듭된 기준금리 인상으로 서민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선거 광고 역시 ‘미국인이 연료와 식량 중 어느 것만 살지 고민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23일 여론조사회사 퓨리서치에 따르면 ‘중간선거 때 투표권 행사에 영향을 줄 사안’으로 응답자의 77%가 ‘경제’를 꼽았다.
○ 트럼프가 장악한 공화당
공화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싸고 내홍에 휩싸인 상태다. 중간선거를 위한 공화당 예비경선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하는 후보가 속속 당선돼 그의 당내 입지가 강화되고 있다. 반면 지난해 1월 트럼프 지지자의 의회 난입 사태를 계기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결별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 이번 경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한 후보에게 패한 보수 거두 딕 체니 부통령의 딸 리즈 체니 하원의원(와이오밍)은 조직적으로 반(反)트럼프 공세를 펼 뜻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강경파들은 연방수사국(FBI)과 법무부가 8일부터 시작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자택 압수수색 및 수사를 문제 삼고 있다. 25일 미국 연방법원은 법무부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자택 압수수색 영장 발부 근거가 담긴 선서 진술서의 편집본을 공개하라고 명령해 압수수색에 따른 정치적 파장도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은 ‘트럼프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당내 예비경선을 거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지를 선언한 인물들이 후보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상원 35석 중 19석, 하원 435석 중 154석이 이에 해당한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이번 중간선거의 특징은 공화당에서 중도 온건파 후보를 보기 드물다는 것”이라며 “‘링컨의 정당’인 공화당이 이젠 ‘트럼프의 정당’이 됐다”고 했다. 18일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가 지지한 후보들은 보수의 가치를 두고 겨루는 대신 누가 가장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트럼프의 대선 구호) 할지, 즉 친트럼프 성향이 얼마나 강한지로 경쟁했다”고 분석했다.
25일 바이든 대통령은 메릴랜드주 록빌에서 열린 민주당 후원 집회의 개회사에서 “공화당에서 극단적인 ‘MAGA당 주장’이 계속 나오는 것은 ‘반(半)파시즘’이 트럼프뿐 아니라 공화당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친트럼프 노선을 내세우고 있는 공화당 후보자의 상당수가 자질 논란에 휘말려 의석을 내줄 위기에 처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경합주인 북동부 펜실베이니아, 북서부 위스콘신에서는 현재 공화당이 차지한 상원 의석이 모두 민주당으로 넘어갈 상황이다. 친트럼프 성향으로 유명한 터키계 방송인 겸 심장외과 전문의 메멧 오즈는 뉴저지주에 살면서도 인근 펜실베이니아에 출마한 사실이 드러났다. ABC뉴스에 따르면 그의 당선 가능성은 20%대에 불과하다. 대표적인 친트럼프 현역 의원인 론 존슨 상원의원(위스콘신) 역시 민주당의 만델라 반스 위스콘신주 부지사에게 오차범위 안에서 밀리고 있다.
공화당 지도부가 중간선거에 기대치를 낮춘 것도 후보들의 본선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19일 상원 선거 결과가 박빙일 것이라 발언한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상원 선거는 후보자 자질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설명했다. 이에 25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매코널은 민주당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주는 민주당의 노리개(pawn)”라며 원내대표 교체를 주장했다.
○ 지원 유세 거부당한 바이든
민주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 여소야대 가능성 등을 우려하고 있다. 23일 로이터통신-입소스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41%를 기록했다. 지난해 1월 취임 당시 55%였지만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군 과정에서의 대규모 사상자 발생 등으로 49%로 떨어졌다. 올해 들어서는 물가 대책 실기(失期) 비판 등으로 30%대까지 밀렸다. 특히 5월에는 36%로 집권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민주당은 이후 지지율이 소폭 반등했다는 점에 기대를 걸고 있다.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도 바이든이 ‘인기 없는 대통령’임은 부인할 수 없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1961년 이후 61년간 대통령 중 취임 19개월 차 국정 지지율이 바이든(38%)보다 낮은 대통령은 없다. 바이든보다 지지율이 불과 1%포인트 높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 또한 1978년 당시 7%대로 치솟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잡지 못해 지지율이 추락했고 재선에도 실패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25일부터 미 전역을 돌며 주요 후보자의 지원 유세에 나섰다. 하지만 4일 전인 21일 워싱턴포스트(WP)가 경합지에서 출마한 민주당의 상·하원, 주지사 후보 60여 명에게 ‘대통령의 지원 유세를 희망하느냐’고 묻자 극히 소수만 “희망한다”고 답했다. 대부분은 WP의 질문에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 적지 않은 후보들은 선거 게시물과 광고에서도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현재 판세대로 공화당이 하원에서 승리하면 새 의회가 출범하는 내년 1월부터 남은 2년간 바이든 행정부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이종곤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반도체지원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바이든 대통령이 입안한 주요 법안이 통과됐지만 이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려면 하원의 동의가 필요하다”며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예산을 두고 사사건건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앞서 16일 공화당 내 강경 보수그룹 ‘프리덤코커스’는 이미 “2023년 예산안 처리를 중간선거 이후로 미뤄 바이든 행정부가 책정한 예산을 깎아야 한다”며 총공세에 나설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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