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 부족한 우크라군, 노획 무기 암거래로 채워

  • 뉴시스
  • 입력 2022년 8월 31일 13시 08분


우크라이나 전선 최전방에 암시장이 들어섰다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으로부터 노획한 무기에서 필요한 부품 등을 추출해 이를 필요로 하는 다른 부대에 넘기고 자기 부대가 당장 필요한 무기를 확보하는 물물교환시장이다.

즈메이라는 이름의 우크라이나군 하사가 작은 방 가운데 놓인 러시아 다연장로켓을 살펴보면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완전히 신품이었다. 2020년에 제조된 것으로 열압력 포탄이 적군 장갑차를 파괴할 수 있을 것이었다.

즈메이 하사는 그러나 이 로켓을 러시아군 탱크에 쏠 생각은 없다. 그보다는 거래용으로 활용할 생각이다. 93기갑연대 소속인 즈메이 하사는 계급이 낮다. 그렇지만 연대가 지정한 우크라이나군들 사이의 무기 교환 담당자다. 전선 지역에서는 이같은 거래가 암시장처럼 활성화돼 있다. 즈메이 하사는 노획한 무기와 장비를 부족한 다른 보급품들과 교환한다고 했다.

지난 주 93연대가 주둔하는 돈바스 지역에서 만난 그는 “거래가 보통 신속하게 이뤄진다. 관료주의는 모두 없앴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방이 지원하는 무기가 쇄도하지만 우크라이나군은 여전히 러시아군으로부터 노획한 무기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낡은 소련제 무기들은 대부분 이미 파괴되거나 노후화했고 탄약도 소진된 상태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 군인들은 필요한 무기들을 제한된 보급이 아닌 전투에서 확보한다. 미국이 지원한 M777 곡사포처럼 강력한 무기가 2400km에 이르는 전선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즈메이와 교대하는 페디르 하사는 “한때 정부에 기대를 했지만 지금은 스스로 해결한다. 바보처럼 앉아서 정부가 뭔가를 보내주길 기다릴 순 없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 전선이 정체되면서 러시아 무기 노획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물자를 교환해야 하는 필요성이 더 커졌다.

우크라이나 주요 전장에 빠짐없이 참여한 것으로 유명한 93여단이 지난 5월 러시아군이 점령한 이지움시 주변에서 작전할 때 벌어진 일이다. 전쟁전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다크 판타지 소설을 펴내던 즈메이에게 어느 날 인접 부대 지휘관이 문자를 보내왔다.

“조금 부서진 T-72 탱크가 있는데 교환할 수 없을까”라는 내용이었다. 그 지휘관이 원하는 건 큰게 아니었다. 수송 트럭과 요격 소총 몇 정과 바꾸자는 것이었다. 즈메이 하사가 답했다. “탱크와 바꾸기엔 너무 약소한데 다른 건 뭐 없나요?” 지휘관이 탱크를 여러대 주겠다고 답했다. 탱크가 여러 대라는 소리에 즈메이하사가 좀더 거래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 탱크를 더 주면 외국에서 지원받은 대전차 미사일과 미제 지대공미사일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스팅어, NLAW 발사기 등 여러가지를 거래할 수 있다. 많이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군인들은 노획한 무기들을 키이우로 보내야 하지만 암거래를 막거나 처벌하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고 했다. 이들은 또 암거래가 살아남기 위해 이뤄지는 것이며 느려터진 관료주의를 극복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 수백억달러 규모의 무기를 지원하는 서방 정부가 우크라이나가 무기 배포과정에 부패가 개입하지 않도록 주문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들 무기가 우크라이나군이 아닌 다른 당사자에게 전해진 사례는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무기 전달을 비공개로 함에 따라 문제가 발생할 소지도 있다.

소형무기 전문가 매트 슈뢰더는 부대간 비공식적 무기 거래가 “재고관리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서 “그러나 우크라이군에서 현재 벌어지는 암거래를 밀거래나 유출로 볼 순 없다”고 했다.

노획한 T-80 탱크 포탑 위에 앉아 있는 알렉스라는 이름의 우크라이나군 병사가 키이우로 노획장비를 보내는 건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무기를 빨리 돌려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전혀 없다. 대부분 우리 자체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제2의 도시 하르키우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던 알렉스는 93연대의 유명인사다. 전쟁 초기 직접 노획한 탱크로 전쟁 초기 이지움과 수미 전투에서 러시아 장갑차 여러대를 파괴했다. 그가 사용하던 탱크는 지금 포탑 수리를 위해 전방에서 빠져 있다. 수리에 필요한 부품을 최근 120mm 박격포와 중기관총을 다른 부대에 건네고 확보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 병력수송 장갑차를 직접 몰고 수리창으로 갔다. 거의 작동하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장갑차 뒤에 세운 뒤 1980년대 아프가스탄 파병 경험이 있어 보이는 한 병사와 농담을 했다.

알렉스는 지난 5월 허벅지 관통상을 입으면서 대퇴골이 산산조각 났었다. 다른 병사들과 함께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가 피격됐다. 정찰은 러시아군 위치를 파악하고 버려진 장비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알렉스는 ”탱크가 소모되고 있다. 전쟁이 지금처럼 떨어진 상태로 계속되면 조만간 소련제 장비와 탱크는 없어질 것이다. 그 땐 다른 걸로 바꿔야할 것“이라고 했다.

전선에서 가까운 지하 사령부에서 만난 알렉스 대대 지휘관 보그단은 부대 상황이 열악하다고 말했다. 오고가는 포탄 소리가 계속 들렸다. ”적으로부터 노획한 모든 무기를 쓰고 있다“면서 보급품의 80%가 노획한 무기라고 밝혔다. 다른 중대들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보그단 대대 700명 병력은 6개월전 최근 사상자와 장비 손실이 큰 대대와 교대하기 위해 배치됐다. 소방대처럼 전선 이곳저곳을 오가며 구멍을 메우는 역할을 하는 6개월 동안 보그단 대대도 병력과 장비 손실이 크다.

서방 지원 첨단 무기가 게임체인저가 되지 않겠냐는 질문에 보그단 대대장은 연대안에 ”외국 장비를 가진 부대는 한 곳도 없다. 도무지 어디로 가는 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마이클이라는 이름의 28살난 병사도 같은 말을 했다. 그는 전선 가까운 곳 작고 허름한 단층집에서 살고 있다. 직무가 거래인 그는 보그단 대대의 보급 책임자다.

그의 집 어지러운 부엌 벽에는 그의 부대가 간절히 원하는 서방 무기 리스트가 붙어 있다. 암호통신기, 반자동총류탄발사기, 크랩스라는 이름의 폴란드제 155mm 곡사포 등등이다.

안드리라는 이름의 크랩 곡사포 부대 지휘관이 곡사포를 내줄 순 없지만 프랑스제 자주포를 준다면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93연대는 현재 구식 소련제 대포만을 가지고 있으며 그나마 포신이 닳고 포탄이 바닥나 있다.

마이클은 ”시급히 나가서 이것저것 사오고 바꿔서 가져다 놓아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은 자의에 의한 것이다. 내가 위험을 감수하는 범죄행위지만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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