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 배달 서비스를 쓰는 소비자는 배달비로 고작 2, 3파운드(약 4000원)를 냅니다. 사업이 지속가능하려면 배달비가 6~10파운드까지 올라야 해요. 이만큼 낼 바엔 직접 마트에 가겠죠?”
영국의 한 장보기 배달 서비스에서 지난해 12월까지 배달 운영 담당자로 근무한 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소비자에게 각종 할인 혜택을 주며 무리한 확장을 일삼았던 ‘고릴라’, ‘잽’ 등 유명 장보기 배달 서비스들이 유럽에서 잇따라 철수하고 있다고 3일(현지 시간) 영국 가디언이 보도했다.
잽은 브리스톨, 맨체스터, 캠브리지에서 철수하고 터키계 ‘게티르’도 일부 지역에서 영업을 중지했다. 가디언은 “장보기 배달 서비스 버블이 터졌다”며 “다크스토어(배송만 하는 점포)에서 물건을 담고 장바구니를 배달하던 근로자들부터 해고됐다”고 전했다.
장보기 배달 서비스들은 동네에 소형 물류창고인 다크스토어를 차려 소비자가 어플리케이션(앱)으로 주문을 넣으면 15~30분 안에 식료품과 생필품을 집 앞으로 배달해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으로 유럽 도시들이 봉쇄 조치를 내렸을 때도 장보기는 허용했지만 소비자들이 외출을 꺼려 이 같은 서비스가 빠르게 성장했다. 또 15~20파운드 이상 구매하면 10파운드를 깎아주는 등의 할인 프로모션으로 소비자를 끌어 모았다.
그러나 코로나19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다시 직접 장보러 동네 마트에 가고 있다. 업체도 더 이상 할인 쿠폰을 뿌리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투자금이 말랐기 때문이다. 사업 모델 자체가 수익을 내기 어려워 투자금을 계속 유치해야 운영이 가능하다. 식료품과 생필품은 도매가와 소매가가 비슷해 상품 판매 자체로 얻는 이득(마진율)이 1~5%에 그친다.
최근 투자자들은 장보기 배달 서비스에 투자를 꺼리는 상황이다. 고물가로 식료품 가격이 오르고 고금리로 업체가 스스로 자금을 끌어오기도 어려워지자 결국 투자자들은 서비스 수익성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유로뉴스는 “고물가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투자자들이 사업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며 투자금도 마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CNBC는 “사업 모델의 자생력은 장보기 배달 서비스가 오랫동안 직면한 의문”이라며 “신규 소비자에게 관대한 할인 혜택을 주면서 동네 슈퍼보다 생필품을 저렴하게 팔았다”고 분석했다. 5월 CNBC는 고릴라가 직원 300명을 해고하고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등 일부 국가에서 철수한다고 보도했다. 게티르는 전 세계 직원 약 6000명 중 840명(14%)을 해고하고, 잽도 직원 10%를 해고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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