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빗살 구워먹는 게 정력의 상징?”…프랑스 정계 육류 소비 논란

  • 뉴시스
  • 입력 2022년 9월 6일 13시 29분


프랑스에서 바베큐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라고 미국 뉴욕타임스(NYT)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프랑스 TV 토론마다 바베큐를 둘러싼 열띤 토론이 벌어지고 국가적 정체성 위기가 닥쳤다는 주장이 터져 나온다는 것이다. 녹색당 의원인 산드린 루소가 지난달 27일 “갈빗살을 구워 먹는 것이 정력의 상징이라는 사고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 뒤 벌어진 일이다.

극우부터 공산당까지 모든 정파의 의원들이 들고 일어났다. 프랑스 정육업자들이 정성들여 만든 마블링 소고기를 우파와 연관시키고 남성을 욕보였다고 비난하면서 평소 따분했을 이 시기의 의회가 성 전쟁으로 뜨겁게 달아 올랐다.

에릭 시오티 우파 공화당 의원은 “미친 짓을 멈춰라”라고 트윗했고 나딘 모라노의원은 “남자들을 온갖 걸로 공격하는데 지쳤다”고 말했다.

파비앙 루셀 공산당 서기장은 “고기 소비는 지갑 사정에 따라 정하는 것이지 바지와 팬티 모양에 따라 정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유럽생태녹색당 고위직인 루소의원은 난리법석이 벌어져서 놀랐다고 했다.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해 육류소비를 줄이자고 한 말이 육류를 둘러싼 남성성 논란으로 이어질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석탄을 불붙이고 소시지와 붉은 고기를 올린 뒤 연기를 뒤집어쓰고 요리하는 것이 정력의 증거는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그러나 프랑스 농업보건부가 매 7년마다 실시해온 INCA라는 연구결과에 따르면 프랑스 남성의 59%가 여성보다 육류소비가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루소 의원은 프랑스 사회가 심각한 가뭄과 산불을 겪었는데도 유독 기후변화 문제에 눈가리고 아웅이라고 지적했다. “남자들이 내가 마치 저들의 심장과 폐를 찢은 것인양 반응하는데 이번 여름처럼 심각한 일을 겪었으면 날고기를 바베큐하면서 좋아하는 건 심각히 재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각 지역 토양과 풀에 따라 생산되는 고기의 품질에 열광하는 프랑스에선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다. 매년 열리는 프랑스 농업축제대 농부들이 덩치 큰 소를 과시하는게 국가적 행사여서 암소 엉덩이를 두드리지 않는 정치인이 당선하기 힘들 정도다.

스테이크의 나라에서 피망을 구워먹는 걸로 만족할 수 있을까?

가능할 것 같지 않지만 세상이 변하고 있다.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100년만에 두번째로 더운 여름을 보냈다. 유엔은 가축이 배출하는 가스가 메탄 등 온실가스 전체 발생량의 14%를 차지한다고 평가한다.

올 프랑스 대선에서도 먹거리가 정쟁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프랑스는 주로 우파인 붉은 고기 지지파와 녹색당 주변의 콩과 채식의 장점을 강조하는 퀴노아 및 두부 여단으로 갈라져 있다.

미식의 나라가 식품의 문화적, 정치적 의미를 둘러싼 논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전통주의자들은 미국에서 유입된 “
취소 문화”가 스테이크와 양고기를 먹지못하게 만들어 지구를 구하려 나섰다고 해석한다. 르몽드지는 식계(食界)라고나 번역해야할 “mangeosphere”라는 신조어로 써가며 햄샌드위치냐 사과냐의 논쟁을 분석하고 있다.

공산당 대선 후보경선에 출마했던 루셀 서기장은 지난 1월 프랑스 사람이라면 전통을 지켜 “훌륭한 와인, 좋은 고기, 좋은 치즈 등 프랑스 음식”을 즐겨야 한다고 말했다고 구설수에 올랐었다. 루소의원 등이 앞장서 외국인 차별적이라고 공격한 것이다. 그러면 쿠스크스나 스시는 먹지 말라는 거냐, 와인을 안 마시는 수백만명의 프랑스 이슬람교인은, “좋은 고기”를 즐기지 않는 채식주의자들은 등등.

당시는 그러나 루셀 서기장의 발언에 박수가 터졌었다. “그럼 뭘 먹어냐 하는데. 두부? 콩? 말도 안된다.”

프랑스 좌파가 분열돼 있다. 루셀 서기장은 프랑스 요리를 전면적으로 바꿔야한다는 주장을 거부하지만 녹색당과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은 변화를 강조한다. 루셀 서기장은 공산당 기관지 뤼마니테가 이달 말 개최하는 음악축제에서 붉은 고기를 많이 제공할 것으로 약속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당 클렌멘틴 우탕 의원은 “고기 소비에 남녀 차이가 있고 채식주의자는 대부분 여성”이라며 “남녀평등을 위해서라도 정력중심주의를 공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격을 어떻게 할 지는 밝히지 않았다.

마린 르 펭의 극우 정당 의원인 줄리앙 오둘은 남성이 여성보다 고기를 많이 먹는다는 것이 “정력 중심주의는 아니며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프랑스 남부 동굴의 초기 인류인 크로마뇽인식 식사법을 추구한다고 했다.

중도좌파 공화당 모라노의원은 프랑스 남성성 “해체(deconstruction)”를 당장 멈추라고 요구했다. 해체라는 용어를 만든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2004년 작고)는 프랑스 남성이 아닌 문장에만 쓴 용어였다.

루소 의원은 “남자를 미워하는 게 아니다. 지구를 몰락시키는 가부장적 시스템을 반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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