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장례식에 천문학적 비용 소요…GDP 감소 전망
상점-식당 문 닫고 사업도 차질, 의회 예산안 편성도 미뤄
"경기 침체 부른다" 우려 속에… 왕실 씀씀이 비판도 고조
전례 없는 규모로 치러질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에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열흘 간 애도 기간에 영국에서는 각종 사업이 중단되고 의회는 긴급 예산안 처리까지 미뤘다. 애도 기간으로 휴일이 늘어남에 따라 가게가 문을 닫고 생산 활동도 줄어들 전망이다.
이는 영국 국내총생산(GDP)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영국이 기술적 경기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고 전했고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모두 납세자 부담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은행 상점 문 닫고 병원은 수술 연기
14일(현지 시간) NYT는 ‘여왕 장례비용은 결국 영국 납세자 부담’이라는 기사에서 장례비용을 분석했다. 이번 장례가 역대급 규모로 치러질 예정인 만큼 비용 소요도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여왕 장례는 영국 전역에 경제적, 사회적 타격을 미치고 있다.
이날 로이터통신은 “수천 명이 갑작스러운 장례 때문에 약속을 취소했고 (빈민을 위한) 푸드뱅크는 문을 닫았으며 슈퍼마켓도 영업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병원에서는 몇 달 전 이뤄진 진료 예약이 장례 때문에 취소되기도 했다. 많은 병원은 장례식 당일 19일 예정된 수술을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헬렌 셀리스버리 옥스퍼드대 의대 교수는 “항암 치료나 화학요법이 필요한 환자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시민 불편도 이어지고 있다.
숙박업소가 장례를 이유로 손님 예약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 가수는 “사이클협회는 장례식 기간 아무도 자전거를 타지 말라고 권고했다. 온 나라가 제정신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영국 최대 소매업체 테스코와 아스다 등은 19일 문을 닫는다고 밝혔다. 맥도날드는 19일 오후 5시까지 영국 내 모든 매장을 폐점한다고 밝혔다.
“안 그래도 어려운데”… 기술적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도
외신은 인플레이션(급격한 물가 상승)과 에너지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 발생한 여왕 장례식이 영국 경기 침체를 앞당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 국내총생산(GDP)이 16조~17조 원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영국 정부는 조만간 정확한 장례비용을 공개할 예정이다. 인플레이션을 고려해도 여왕 장례비용은 1965년 윈스턴 처칠 총리 장례식이나 2002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어머니 장례식보다 많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 하원에 따르면 여왕 어머니 장례식 때는 장례 직접 비용 82만5000파운드(13억 원), 경호 및 보안에 430만 파운드(69억 원)가 들었다. 이번 여왕 장례식과 뒤 이은 찰스 3세 왕 대관식에 드는 직접 비용만 9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가디언도 14일 “영국이 여왕을 애도하기 위해 멈춰서면서 경기 침체 위험이 짙어졌다”고 전했다. 가디언은 “여왕 타계 전부터 영국 경제는 취약해져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며 “장례 때문에 공휴일이 늘고 기업이 사업을 일시 중단해 경기 전망은 더 나빠졌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AXA인베스트먼트 모듀프 아데크벰보 이코노미스트는 “장례 기간 은행이 추가로 쉬면서 영국이 기술적 경기 침체(technical recession)에 빠질 위험이 커질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기술적 경기 침체란 각종 수치상으로는 경제 침체 상태지만 대규모 실업, 기업 파산 같이 실제 침체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경제 상황을 의미한다. ‘숫자상 침체’란 뜻이다.
"왕실 돈 씀씀이 공개해야" 비판도
영국 경제 상황은 좋지 않다. 물가상승률은 10%를 넘어 최근 40년 이래 가장 빠르게 물가가 오르고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다음달부터 평균 가계지출도 80% 늘어날 전망이다. 영국인은 ‘식량이냐, 난방이냐’ 선택해야 할 처지에 몰렸다는 평가도 나왔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도 12일 "여왕 장례식이 영국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 예측된다"고 전했다. 경제컨설팅 기업 판테온매크로이코노믹스 사무엘 톰스 영국 담당 수석연구원은 장례식과 임시 공휴일 지정으로 이달 영국 GDP가 0.2% 감소할 것이라며 “이는 영국을 2개 분기 연속 GDP 하락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도 “장례식 때문에 공휴일이 늘어나고 이는 영국 경제 악영향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은 하원 긴급 예산안 논의도 장례식 뒤로 미뤘다. 영국 투자사 AJ 벨 대니 휴슨 애널리스트는 미 CNN방송에 “긴급 예산안 편성이 지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노무라연구소 조지 버클리 연구원은 “런던 꽃집은 환호할 것이고 커피 판매는 치솟겠지만 전체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영국 왕실 돈 씀씀이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 왕실이 집행하는 비용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영국 재무부는 왕실에 ‘주권 보조금’이라고 불리는 1억 달러 규모의 돈을 지급한다. 현재 왕실 재산은 280억 달러 규모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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